이야기
※ 프라하 에스타테 극장 내부 모습
"프라하 사람들은 나를 (온전히) 이해해 준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평생 프라하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프라하에서는 뜨거운 환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프라하와 인연을 맺은 모차르트는 그의 오페라 '돈조바니'를 프라하에서 초연했을 정도로 프라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라하에서 오페라를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에서 프라하 오페라를 검색하니 여러 사이트가 나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모차르트의 '돈조바니'였다. 모차르트의 돈조바니 첫 공연을 했으니, 프라하에서 돈조바니 공연이 많을 것 같았다. 막상 오페라를 찾아보니 매주 다른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었다. 내가 방문하기로 한 전주에 돈조바니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내가 프라하에 머무는 기간 동안 몇몇 오페라가 있었지만 내 관심을 끈 것은 모차르트의 '마술 피리'와 조아키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였다. 프랑스 희곡 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피가로 삼부작 중 첫 번째가 '세비야의 이발사', 그다음이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마지막이 '죄지은 어머니'다. 그중 '세비야의 이발사'를 조아키로 로시니가, 후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을 모차르트가 오페라로 작곡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마술피리' 두 오페라 모두 모차르트와 관련이 있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래도 '모차르트!'라며 마술피리를 골랐다. 극장은 모차르트가 '돈조바니'를 초연한 '에스테이트 극장(Estate Theatre, 스타보보스케 극장)'였다. 이 극장은 1783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오페라, 발레, 연극 공연을 하고 있다.
프라하에 도착해 둘째 날 프라하 구 시가지를 샅샅이 보고, 호텔에 들려 잠시 쉬고 공연시간 19시에 맞춰 오페라 극장에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으로 갔다. 극장 근처에 보니 정장과 드레스를 입은 남녀가 극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오페라 공연을 볼 때 정장 차림으로 공연 1시간 전에 극장에 가서 킥테일 파티를 하며 사교모임을 하는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모른 나는 공연 30분 전에 도착해 바로 자리로 갔다. 나중에 중간 쉬는 시간에 보니 칵테일 또는 가벼운 식사를 하는 장소는 지하 1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운이 좋아 자리는 1층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극장에 들어가니 오래된 극장이어서 규모가 크진 않았다. 650석 규모의 극장이었다. 1층이라 무대가 잘 보여 좋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옆에 발코니석에 앉아보면 좋았을 것 같았다. 다만, 오래된 건물이어서 냉방 시설이 없었다.
대사와 가사는 독일어였지만 다행히 영어 자막이 있었다. 사전에 줄거리를 대략 보고 가지 않았다면 자막이 있었어도 이해가 힘들 뻔했다. 처음 들어보는 마술피리였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친숙한 '밤의 여왕 아리아'가 있었다. 조수미 씨가 맡았던 역이기도 하고 고역의 다양한 음을 연속해서 내는 아리아로 유명하다.
1층에서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을 보며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 음악 소리 또한 마이크 없이 생생하게 들렸다.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까지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역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다. 음악에 화려하게 여러 음이 조화롭게 이뤄져,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모차르트 특유의 발랄함이 잘 묻어 있다. 이런 곡이 모차르트 사망 2달 전에 작곡한 곡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좋았다.
프라하 역사 지구에는 오페라를 공연하는 극장이 3군데 있다. 유서 깊은 '에스타테 극장', '스테이트 오페라 극장(State Opera)', 그리고 정부에서 후원하는 '국립극장(National Divaldo)'에서 오페라를 볼 수 있다. 각 극장의 거리는 2km 반경에 있다. 이외에 블타바 강변에 있는 19세기에 문을 연 콘서트홀 루돌피넘(Rudolfinum)도 유명한 클래식 공연장이다.
오페라 공연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사실인데 오페라 공연 말고도 매일 저녁 성당, 시청, 프라하성 등 도시 곳곳에서 클래식 공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페라만 한편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시를 다니면서 보니 곳곳에 있는 성당에서 그날 저녁 클래식 공연 티켓을 팔고 있었다. 문뜩, 성당에서 듣는 클래식 공연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각 성당에서 공연되는 곡이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가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좋아한다. 특히 격렬한 폭풍우를 연상시키는 여름과 매서운 눈보라를 떠오르게 하는 겨울의 격렬한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한다. 그래서 공연에 더 끌렸다. 사계를 좋아하지만 공연으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프라하 클레멘티움 안에 위치한 '미러 채플(mirror chaple)'에서 하는 공연을 보러 갔다. 여기에서는 매일 저녁 18시, 20시 2번 공연이 있었다. 내가 고른 것은 18시 공연이다. 채플에 가니 100석 정도가 마련된 작은 성당이었다. 그리고 공연 직전에 보니 자리가 가득 차있었다. 이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협주곡과 오르간 연주곡으로 구성됐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으로 시작해,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여름,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라모사(Lacrimosa)', 바흐의 '아베마리아', '토카타와 푸가', 베토벤의 '운명' 등 유명 클래식의 인기 부분만 골라 공연한 1시간짜리 공연이었다.
체코 필하모닉 소속의 바이올리니스트 'Viktor Mazacek'를 비롯한 현악 6중주, 소프라노 'Eva Mullerova', 오르간의 '로버트 휴고'로 구성됐다. 비발디의 사계를 워낙 좋아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솔로 바이올리니스트가 원곡에 강약을 조절해 연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작은 성당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소프라노의 목소리, 성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오르간의 장엄한 멜로디까지 음악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규모가 큰 공연장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한음 한음이 살아서 성당 내 허공에서 춤을 췄다.
그렇게 꿈같은 1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는 3명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안토닌 드보르작,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이들 음악가들의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인 낯설지라도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아하!' 소리가 나올 정도로 널리 알려진 곡들이 많다.
마지막 떠나는 날 오전에 열린 '2025 프라하 마라톤 대회'에서 마라토너들의 출발 사인과 함께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2악장 '몰다우강(블타바 강의 독일어식 명칭)'이 반복해서 흘러나와, 역시 클래식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마술 피리, 미러 채플 공연, 프라하 마라톤 그리고 성 비투스 성당이다.
많은 도시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크고 작은 클래식 공연이 풍성한 곳은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프라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의 도시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프라하에서의 일주일! 클래식 음악에 흠뻑 취해 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