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원정기:보문호를 달리다(2)

런린이 다이어리 18-2

by 견뚜기

보문호 산책로 입구를 향해 달리다 보니 반대편 보문호 산책로 입구 쪽에서 러너 한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반가웠다.


낯선 코스를 달리다 보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오는 러너를 보자 내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온다는 것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다른 러너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한 길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경주월드를 지나 보문호 산책로 입구에 도착하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보문호가 한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넓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보니 1km 좀 넘게 달렸을 뿐이다. 아직 여력이 있었다. '그래! 한번 달려보자!'하고 보문호 산책로로 들어섰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또는 달려가는 몇몇 러너들이 보였다. 문뜩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화와 길만 있으면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 나에게는 낯선 보문호수지만, 맞은편의 러너에게는 동네 코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인 보문호수를 달린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이역만리에서 동족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다른 러너의 존재 자체가 새삼 든든하게 느껴졌다.


'역시 달리기는 새벽 달리기지'라고 생각하며 호수가 찬 공기를, 떠오르는 태양빛에 반짝이는 호숫물을 바라보며, 힘차게 바닥을 박찼다.


이날의 달리기는 속도나 시간 같은 기록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보문호 산책로를 즐기면서 달렸다. 몸에 부담 가지 않는 속도로 달리면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즐기며, 잠시 멈춰 사진도 찍고 다시 달렸다. 내가 달리는 길이 새롭기도 했지만, 호수 건너 풍경도 웅장했다. 두리번, 두리번. 그렇게 달리다 보니 거리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다.


어느 순간 아스팔드 길에서 나무판자로 만든 길이 나왔다. 마치 나무로 만든 다리 위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길이 없는데 나무다리로 길을 만든 구간이 있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촉감이 달랐다. 아스팔트를 디딜 때와는 달리 나무판자의 미세한 반동이 푹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나무 길이 눈앞에 쭉 이어져 있었다. '저 나무길 끝까지만 가보자.'


그렇게 달리다 보니 스마트워치에서 어느새 3km를 달렸다는 진동이 울렸다. 좀 더 무리하면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심 내가 알지 못하는 코스에 무리하게 도전했다가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미 3km를 달렸으니, 호텔로 돌아가면 왕복 6km로 평소 달리는 거리 정도 달린 셈이었다.


그래도 일단 보문호 산책로를 달리긴 했다. 전날 저녁에는 보문호 산책로를 달리는 것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오늘 일부라도 달렸다. 다음에 다시 달리면 한 바퀴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면서 느낀 것이지만 같은 길이라도 갈 때와 올 때 느낌이 다르다. 돌아오면서 내가 달려왔던 길이 어땠는지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리고 가능하면 같은 길을 그대로 달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갈 때는 북천을 왼쪽에 두고 달렸다면, 올 때는 그 반대쪽 길로 달렸다.


가파르게 흐르는 북천의 물줄기와 강물이 만들어내는 찬 공기가 달아오른 몸은 식혀줬다.


신평교 옆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북천 산책로 역시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북천을 따라 쭉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미지의 코스를 달리는 것이 안 내켰다. 그래도 보문호 산책로는 전날 보고 계획이라도 세워놨었다. 하지만 북천 산책로는 달리면서 즉흥적으로 결정하자니 '너무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 신라교로 다시 올라와 호텔로 향했다.


그렇게 나의 첫 원정 달리기는 끝났다.


첫 원정 달리기에 대한 내 점수는 50점이다. 목표했던 보문호 한 바퀴를 다 못 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코스를 달리는 설렘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보문호 산책로를 완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와서 꼭 다시 달리고 싶다는 여운이 남았다.


"그 섬이 아니라 보문호수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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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호 산책도를 따라 달리다 보면 나무로 된 길이 나온다.(왼쪽). 북천 강변을 따라 난 길을 달려 호텔로 가다 보면 황룡사 9층목탑을 본떠 만든 황룡원 중도타워가 보인다.(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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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내가 달린 보문호 산책로 경로. 보문호수의 1/4 정도 달렸다. 다음엔 꼭 완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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