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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Oct 09. 2021

21년 BIFF(부산국제영화제) 일지 : 1일차

영화리뷰

12시 <프랑스> : 레아 세이두의 얼굴 


올해 BIFF 상영작 중 레아 세이두가 출연하는 영화가 3작품이다. ‘프랑스’ ‘디셉션’ ‘프렌치 디스패치’ 그 중 여주 원탑 주인공인 ‘프랑스’에서 레아 세이두의 얼굴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영화였다. 


기대했던 대로 레아 세이두의 얼굴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지만, 그게 황홀하고 행복했냐 하면 그렇진 않았다. 집착적으로 레아 세이두의 얼굴을 잡는 카메라, 관객이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줌 인되는 카메라, 그러나 이런 카메라의 시선이 영화의 주제,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영화의 주인공 프랑스는 프랑스의 국민 앵커이자 기자다. 그러나 거의 셀럽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그녀 자신도 그런 대우를 즐기는 것 같다. 영화의 도입부 프랑스 대통령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까다로운 질문을 날리곤 막상 매니저와 장난을 주고받는 프랑스. 그녀에게 직업적인 전문성을 기대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든다. 


취재현장에 가서 상황을 통제하고 장면을 연출하는 그녀의 취재방식을 과연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녀 외의 다른 기자들은 어떤 식으로 취재를 하는지 우리가 어찌 안단 말인가.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는 뉴스와 기사는 어디까지 연출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일 것인가. 


그러나 이런 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영화는 결국 프랑스라는 한 인간의 삶에 더 집중한다. 커리어와 명성, 남편과 아들, 정규적인 삶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프랑스는 불행하다. 죄여오는 대중들의 시선이 어느 순간 버거워지고 그녀는 그런 삶에서 탈출하고 싶다. 그때쯤 교통사고로 만난 타인(이민자 가정)에게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보상이라는 명목 하에 4만 유로를 쏟아 붓고서야 요양원에 들어가는 프랑스. 


그러나 거기서도 또 다른 타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저널리즘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프랑스. 개인사적으로 거대한 비극을 겪고, 취재현장에서 진짜 괴물의 가족을 만난 후에야 프랑스는 그 타인에게 고백한다. 큰 불행을 겪고 나니 이 정도 쯤이야, 진짜 괴물을 겪고 나니 너 정도 쯤이야. 직업이 나를 죽이고 있어. 그런데 다시 현재를 살 수 밖에 없어. 씁쓸하고 체념적인 자기 고백이다. 


16시 <애즈 인 헤븐>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잔잔하고 목가적인 여성청소년의 성장기라 예상한 영화 <애즈 인 헤븐(2021, 테아 린드버그)>은 실제로는 강렬한 종교영화이자 성장영화인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굉장히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통의 성장영화가 외부적 요인 및 주인공의 내적갈등으로 인해 내면이 깨어지고 부서지며 한발 앞으로 나가는 혹은 같은 자리에서라도 미세하게 변하는 모습을 그린다면, <애즈 인 헤븐(As in Heaven)>은 주인공이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응하며 종교인이자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트라우마에 가까운 미신적인 혹은 종교적인 경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영화의 도입부 주인공 리즈가 평야에서 민들레 홀씨를 분다. 바람에 날려 하늘로 올라간 민들레 홀씨는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은 곧 피를 머금는다. 그리고 핏방울이 한 방울씩 리즈의 얼굴 위로 떨어진다. 평야 위에 거대한 피구름이 형성된 압도적인 장면을 보여주며 리즈가 꿈에서 깨어난다. 이렇듯 꿈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이후 벌어질 리즈의 아픈 성장통을 암시하는 꿈으로 시작한 영화는 엄마의 꿈을 지나 다시 피를 뒤집어 쓴 리즈의 꿈으로 연결된다.


1910년대 덴마크를 배경으로 농장주의 딸인 리즈는 곧 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드디어 어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기회를 얻었다 생각한 리즈는 꿈에 부풀어 있다. 물론 아빠는 여전히 리즈의 진학을 못 마땅해 하고, 집안일을 돌봐주는 할멈도 마뜩찮아 한다. 그렇지만 만삭인 엄마는 리즈의 진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엄마가 출산을 하는 그 하룻밤 사이 모든 상황이 달라져 버린다.


그 밤 리즈는 엄마의 난산을 목격하며 세 번의 기도를 한다. 첫 번째는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끝맺지 못하고, 두 번째는 자신의 것을 내어놓으며 신과 거래를 하고, 세 번째는 신의 뜻을 받아드리며 주기도문을 끝맺는다. 이 과정이 종교인이라면 겪었을 법한 부정과 회피-기복신앙-순종의 과정을 거친다. 신은 타협이 대상이 아니며 온전히 그 뜻을 따르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리즈의 성장통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를 묵직하게 끌고 가는 영화의 시선으로 인해 마지막 리즈의 모습은 한 인간으로서 결연함마저 엿보이게 한다. 


인간이 본 비전이나 인간이 해석한 응답으로는 신의 뜻을 헤아릴 수 없고, 결국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체화해 가는 주인공을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 리즈의 얼굴을 오롯이 남기는 작품이다. 


19시30분 <> : 신인감독 영화구나 


올해 BIFF는 유튜브에서 ‘더 친절한 프로그래머’라는 코너를 통해 섹션별로 추천작을 소개했다. 아시아 섹션을 담당하는 박선영 프로그래머가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영화’로 소개하여 선택한 영화. 영화제 마지막 4회차는 늘 피로에 쩔어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뭔가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맨 마지막 장면이 정말 압권, 엔딩씬이 시작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해서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 한 편을 다 보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우울한 분들께 강추라고 하심. 그러나 이 글을 쓰면서 마지막 장면이 뭐였더라? 다시 생각해야 했던;; 내게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던 엔딩씬;;)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아, 신인감독이 만든 영화구나. 몇 년 전 한국영화 비전 섹션에서 틀었을 법한 느낌. 전체적으로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는 슬프고 애잔함. 지난한 현실을 보여주고, 결말 즈음 환상적인 마무리를 하고, 현실을 비집고 들어간 조그마한 틈바구니를 보여주며 끝나는. 전형적인 아시아 신인감독 영화 느낌 물씬. 거기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출신의 카자흐스탄 감독답게 BIFF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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