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우지우 Oct 16. 2021

21년 BIFF(부산국제영화제) 일지 : 6일차

documentary’s day / 영화리뷰

16시 <소울영혼그리고 여름> : 음악다큐의 어마무시함 


평일은 매표가 쉬울 거라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올해 마켓이 11일부터 열리면서 평일에도 표가 없는 상황;; 그래서 표가 있는 걸 구하다보니 다큐멘터리 두 편을 연달아 본 날. 


1969년, 6주에 걸쳐 주말마다 열린 음악축제 ‘할렘 컬쳐 페스티벌’에 대한 기록영상이자,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 권리, 자유, 그리고 소울에 관한 영화. 블루스, 아프리칸 뮤직, 푸에르토리칸 뮤직과의 결합, 가스펠, 소울 등 장르를 넘나들며 아우르는 흑인뮤직의 향연. 19세의 스티비 원더로 오프닝을 연 영화는 니나 시몬의 공연으로 정점을 찍고, 축제 당시 꼬마였던 관객의 현재 시점의 소회를 담으며 끝맺는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당대 뮤지션들의 공연과 3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들이 몰린 축제의 기록이 50년간 방치되었던 이유, 그리고 그것이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공개된 이유가 너무 뻔해서 허탈할 정도. 뮤지션이 흑인이고, 관객이 모두 흑인이기에 이를 틀어줄 방송이 없었고 그렇기에 팔리지 못했던 것. 


전세계가 인류의 달착륙으로 들뜬 그 시점, 할렘에서는 컬쳐 페스티벌이 같은 무게의, 아니 더 큰 의미를 가진 중요한 축제였음을 보여주는 당시의 인터뷰들. 사진, 아카이브 영상, 뮤지션 및 관객들의 인터뷰까지 친절히 들어가 있는 영화는 당시 할렘의 뜨거운 공연장으로 관객들을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음악 다큐 관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위다. 음악 다큐는 단순한 공연 실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제공되는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영화가 들려주는 음악도 감상하며, 그 와중에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따라가야 하는 어마무시한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관람인 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영화의 호흡이 긴 편이고 영화제 기간이 아닌 때 감상하기라도 했지,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은 영화의 전체적인 호흡도 빠른 편인데다 영화제 기간에 감상하다보니 에너지 소모가 진짜 엄청났다. 117분짜리 영화보고 뻗을 지경. 물론 그저 당대 뛰어난 뮤지션들의 음악 감상하며 흥겹게 감상해도 되지만 그런 성정이 못되는 것이 함정;; 그리고 이야기덕후인 나는 극영화를 보는 것보다 다큐를 보는 것이 기본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더 큰 편임.  


20시 <산등성이의 뱃사람> : 영화의 에세이화에세이의 영상화  


<소울, 영혼, 그리고 여름>을 보면서 에너지를 그리 소모해놓고 또 다큐를 보러 온 패기.(그래서 다음날 2회차 영화인 ‘감독은 부재중’을 놓쳤을 뿐이고;;) 이 영화도 평이 좋던 ‘나의 집은 어디인가’랑 시간이 겹쳤는데, 왠지 <산등성이의 뱃사람>은 지금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아서 선택함. 그리고 올해 박가언 프로그래머의 추천작이 대체로 좋아서 그녀의 추천을 믿어보기로 함.  


감독의 자전적인 에세이 형식의 영화. 그러면서 아빠의 고향인 알제리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여행기록이기도 함. 몽타주, 사진, 푸티지를 이어붙인 영상들이 이어지고, 산악지대에 위치한 아빠의 고향으로 들어서며 그나마 씬 혹은 시퀀스라고 할 수 있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감독은 철저히 카메라 뒤로 숨고, 오로지 알제리의 풍경, 그곳의 사람들을 담는다. 카메라 너머의 감독에게 관심, 호기심, 호의, 적대감을 표하는 알제리의 사람들. 그 위로 전설, 소설(이라세마), 신화, 역사를 아우르는 독백이 펼쳐지고, 감독의 내밀한 고백들은 간혹 말도 안되게 설득력이 있다.


아빠의 고향에서 만난 친척이 선조들의 무덤을 보여주며 자고 가라고 하자, 갑자기 그 산골마을에서 뿌리를 내릴까 두려워진 감독이 허겁지겁 호텔로 돌아와 인사도 없이 도시로 떠나는 심경. 자신이 자라온 브라질 바닷마을 포르탈레자가 아닌 이곳 알제리 산골마을에서 자랐다면, 58년 뒤에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포르탈레자로 갔을까 라며 일어나지 않은 가정을 해보는 것 등. 


<여성 전용 객차에서>에 이어서 다큐를 보며 하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글로 기록되어 지는 에세이가 아닌 영상으로 기록되어진 에세이의 가치, 힘, 심상들. 영상으로 시간과 공간, 그 안의 사람들을 담고, 그 수많은 기록 중에 감독의 선택에 따라 편집되어진 시간과 공간들. 

매거진의 이전글 21년 BIFF(부산국제영화제) 일지 : 5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