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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지우 Oct 16. 2021

21년 BIFF(부산국제영화제) 일지 : 7일차

영화리뷰

17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익숙하고 낯선 오슬로 


영화제 7일차쯤 되니 몸이 정말정말 안 좋았다.(거기다 어제 에너지 소모가 극심한 다큐를 연달아 두 편이나 봤으니;;) 결국 2회차 ‘감독은 부재중’은 포기하고 3,4회차도 포기하려 했으나, 무리해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CGV 스타리움관 의자가 너무나 편했고, 영화도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컨디션 회복. 


(어느 영화나 그러하지만) 이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감상이 다르지 않을까 싶었던 영화였다. 여성인지 남성인지, 20대, 30대, 40대인지, 어떤 연애경험이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 그래서 결국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긍정했는지 혹은 부정했는지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만 같은 영화. 그래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오슬로, 그리고 주인공 줄리에의 얼굴. 


영화는 총 12장으로 나눠져 있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역시 에필로그. 이러저러해서 하던 공부도 바꾸고, 이러저러해서 애인과도 헤어지고, 이러저러해서 세 번의 이별(전남친, 현남친, 임신인줄 알았던 시간들)을 경험한 후 결국 줄리에가 그런 자신과 삶을 긍정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 싶은 관객도 있을 것이고, 그저그런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은 영화. 여튼 나는 좋았다, 매우.  


20시 <마르크스 캔 웨이트> : 냉철한 자기반성의 고백 


지인들이 4회차인데도 집중해서 봤다, 눈물 줄줄 흘리면서 봤다, 마르코 벨로키오 영화 못 봤더라도 상관없다, 꼭 보라고 해서 본 영화. 물론 나도 굉장히 집중해서 보고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 보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의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의 자전적인 다큐 영화인데, 자신과 가족에 대한, 특히나 쌍둥이 형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감상은 극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은 다큐도 잘 만드는구나. 작가로 치자면 소설 잘 쓰는 작가가 에세이도 잘 쓰는 느낌. 특별한 서사나 인과관계를 담지 않은 다큐인데도 엄청 물 흘러가듯 흘러가며, 이야기가 이어지고, 장면이 전환되며, 집중이 되는 느낌. 


80대에 접어든 감독과 형제들이 1968년 29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형제 카밀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자의 관점으로. 지식인이자 활동가로 명망을 날린 둘째형, 위대한 감독으로의 단계를 차곡차곡 밟았던 마르코, 형과 동생의 명성에서 자신만의 생활감을 찾은 셋째형, 엄마의 정서를 이어받은 누나들.  


그 과정에서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지옥불을 두려워했던 어머니, 정신질환을 앓던 맏형, 청각장애인 누나의 사연이 나오며, 이를 담은 감독의 영화 <호주머니 속의 손>(1965), <눈, 입>(1982), <내 어머니의 미소>(2002) 등의 클립이 삽입된다. 엄마가 마음을 쏟은 자녀는 질환과 장애를 가진 자녀였고, 자랑스러워했던 자녀는 둘째와 마르코였다. 셋째처럼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한 카밀로는 마음속에 깊은 우울을 차곡차곡 담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50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그에 대한 죄책감과 각자의 후회, 회환을 털어놓는 형제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감독의 태도는 시종일관 냉철하다. 하물며 그 자신에게도. 거장의 냉철한 자기반성적 고백은 나에겐 눈물보단 명징함을 남겼다. 


영화계에서 내 자리가 있을까 묻는 카밀로의 편지에 답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감독. 현실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해 우울과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는 동생의 고통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부르주아적 관념을 벗어나야 고통에서 벗어난다며 자본론을 권했던 감독. 그에 대한 카밀로의 대답이었던 '마르크스는 나중에...'


이 다큐에서는 감독도 카메라 앞에 적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감독의 딸, 아들과의 대화에서 카밀로에게 답신을 했냐는 질문에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버무리는 감독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고, 왜 카밀로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 (얼마간의) 질책을 담은 자식들의 물음에 다급하게 변명하는 모습이 담긴다. 


나이 들어가는 감독의 모습과 여전히 29살에 머물러 있는 카밀로의 사진이 병치되는 마지막 엔딩씬의 여운까지 정말 깔끔하고 냉철하며 무엇보다 잘 만든 자전적 다큐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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