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막별 Feb 13. 2021

법정스님과 어린왕자

영혼의 모음

어린 왕자!

지금 밖에서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 련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쓰여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묻은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몇 해 전, 그러니까 1965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였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너를 통해서 나 자신과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가난한 서가에는 너의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메마른 나의 가지에 푸른 수액을 돌게 했다.

솔바람 소리처럼 무심한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재임을 투명하게 깨우쳐 주었다.


더러는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방울처럼 울려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법정스님 <무소유> 중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법정스님이 인생 책으로 꼽은 것이 바로 화엄경과 어린 왕자라고 한다. 스님이니까 불교 경전 하나쯤은 당연할 것 같은데 어린 왕자는 정말 의외다.


20번을 더 읽고 30권이 넘는 책을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했다고 하실 정도로 어린 왕자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스님과 친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린 왕자 책을 읽고 난 반응으로 능히 짐작하실 수 있으셨다고..

스님에게 어린 왕자 책은 사람의 폭을 재는 척도로 한 개의 자가 되기도 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겠기에 마음으로 크게 와 닿은 부분이었다.


스님은 생전 '미리 쓰는 유서'라는 글에서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씀도 함께 하셨다.






이외에도 '무소유' 책 속에는 좋은 구절이 많이 있다.


읽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탁 치게 되고 가슴으로 깊게 스며드는 내용들로 가득하지만 

나이를 더 먹으면 온전히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 속에는 아직도 내가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깨달음, 통찰력이 분명 있다.   


비우고 버렸으나 이따금 찾아오는 소유욕과 집착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고,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잊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훌훌 털어버리면 마음이 편안 해질 텐데 알면서도 한낱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그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인생은 언제나 배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법정스님의 그 아름답고 순수한 마음이 조금은 슬프게도 느껴지는 '무소유'라는 책을


힘든 세상살이와 인간관계에 지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이터널 선샤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