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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Jun 12. 2016

시간의 틈새를 건너다

프로젝트의 기록 /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01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것.”


사전에 쓰인 시간의 정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시간을 멈추고 그 틈새를 함께 건넌다. 자신의 Identity를 담아 거리 위를 활보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가짐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정다운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얼굴이 아닌 발걸음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뷰파인더를 통해 그분들의 시간의 틈새를 기록한다.


뒤집힌 사진인가? 비 오는 날, 도시를 거니는 소녀의 모습의 반영이다.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길을 걷는 순간의 장면을 정확하게 묘사하고는 있다. 하지만 아스팔트 바닥에 비친 허상... 인물의 묘사에 있어서 우산을 쓴 여성들이라는 점 이외에 나이, 키, 두 사람의 경우 서로의 관계 등 일반적인 인물 사진이라면 쉽게 인지 할 수 있는 요소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한발 물러나 있다. 프레임 밖에서 일어나는 실제 상황이 어떨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 위에 한 소녀가 춤을 추는 듯 하다.

지금의 내 직장은 서울 외곽 쪽으로 이전했지만 작년까지 강남역에 위치했다. 카메라를 늘 소지하고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점심시간 혹은 퇴근시간을 이용하여 강남대로 주변의 모습을 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거리의 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할 때는 '초상권'이라는 법적인 문제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활동에 절대 방해가 되어서도 안되고, 몰래카메라와 같은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몇 번을 다짐하며 촬영에 임한다. 이렇게 엄격한 규칙을 스스로 만들고 지키다 보니 오히려 독특한 앵글이 만들어지고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도시의 구석구석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여러 사람이 묘하게 똑같은 모습으로 걷기도한다.

광각을 이용한 촬영은 실제 하지 않는 장면처럼 묘사되고는 한다. 표준이나 망원과는 다르게 Perspective가 굉장히 극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큰 것은 더욱 크게, 작은 것은 더욱 작게, 이미지를 이질적으로 변형시킨다.

바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멈춰서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이 대비된다.

평범한 발걸음도 어떤 순간에는 낯설게 느껴진다. 얼마큼 낯설게 보일 것인가는 사진가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사진가의 진심이 담긴 사진은 보는 이의 마음 또한 움직일 수 있다. 좋은 사진이란 그런 것이다. 아직 나는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택도 없는 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겠나?

또각, 또각 걸어가는 어린 친구의 깃털 같은 가벼운 발걸음
화가 치밀어 올라 자리를 떠나는여성을 남자가 달래주고 있는 듯 하다.

나의 인생에서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분들이 나의 사진에 남아있다. 그 시간, 그 공간에 그분들이 렌즈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이 사진들은 당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타이밍으로 나의 프레임에 남아준 미지의 그분들에게 미천한 졸필이나마 고마움을 표시해본다. 평범한 사진을 찍는 것이 지겨워져서 여러분의 카메라가 어느 날부터 옷장 혹은 책상 서랍에 잠들어있다면, 과감하게 비가 내리는 날, 혹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심으로 카메라를 들고나가 보자.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독특한 풍경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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