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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Jun 26. 2016

흑백 사진도 색이 있다

사진을 꿈꾸다 /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06

누군가 흑백 사진을 포스팅하면 완전히 무시하거나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무지의 시절이 있었다.


"자기가 무슨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된 줄 아나?" 그냥 '체' 하는 것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뭔가 멋있게 보이게 하기 위해 그냥 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었다고 장담했고 형이 상학적인 제목을 달거나 아니면 'Untitled'의 사진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거부했다. 작가의 메시지를 읽으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과도한 비네팅을 넣는 등, 후보정(흑백으로 바꾸는 것도 후보정일 테니)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사진 초보 시절의 '미련한 객기', '알한 자존심' 같은 것 이었을 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점심시간 한 사진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장의 흑백 사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하고 멍청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일깨워 주었다. 농구 경기가 끝나고 패배한 팀 한선수가 코트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고 상대팀 선수 한 명이 허리를 숙이고 그 선수 등에 손을 올려 위로해 주는듯한 흑백 사진이었다.

메시지는 간결하나 강력했고 흑백이었지만 그 색의 깊이는 한없이 깊었다.

시간이 지나 사진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흑백이던 컬러던 후보정 유무와 관계없이 사로잡혀있던 사진에 대한 '무엇'을 지워가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편견


터널 / 저 너머에는...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처럼 출근하다 갑자기 땡땡이를 치고 훌쩍 떠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카메라만 들고 떠나고 싶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규칙 및 조건은 세 가지.


1. 촬영지를 즉흥적으로 발견한다.

2. 폰은 들고 가지 않을 것.

3. 흑백 사진으로 후보정을 염두에 둘 것


강원도 정선의 숙소에 짐을 풀고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이동했다. 폰을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정보는 실시간으로 확인해볼 길을 없었다. 차로 이동하며 오로지 나의 눈에 의지 해야 했다. "여기 좋을 것 같다."라고 하면 주변에 주차할 수 있는 곳에 주차를 하고 10분이든 몇 시간이든 걸으며 주변에서 탐색, 촬영을 하는 방법을 유지했다.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을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었다. 나를 좀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눈빛딱 보면 안다. 그분들에게는 간단한 목례를 건넸다. 계단에 앉아 내 몰골(?)을 보고 킥킥대는 친구들 에게도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는 여유 정도는 장비하고 촬영에 임했다. 이번 여행에서 폰을 배제한 이유는


현장의 몰입을 위해서.


늘 인터넷으로 하던 것을 현장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눈으로 직접 보이는 안내판, 간판에 의지해보면 신선한 경험이 될까 싶어 생각했던 건데 어느 정도 예상은 적중한 듯하다. SNS나 전화의 집작(?)에서 벗어나 오롯이 걸으며 주위를 살피며 사진에 집중, 몰입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기차 / 고풍 스러운 기차의 형상을 기대 했건만, 현대적인 모습에 실망
무게 / 이 작은 구조물이 끝없는 기차의 하중을 견뎌야 했다.
기울어진 길 / 원심력을 이겨내기 위해 곡면철로의 실을 안쪽이로 기울어져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장에서 만난 시골 작은 마을의 풍경은 도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부터, 흔하게 볼 수 있는 표지판, 도로의 모습, 보도블록까지 모두 생경하다.

기찻길 주변에 많이 머물렀는데, 예상만큼의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지는 못했다. 시간대가 낮시간이라 그림자의 길이도 짧고 강한 콘트라스트 때문에 부드러운 계조를 표현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흑백 사진의 특성은


1. 오래된 느낌을 쉽게 전달할 수 있다.

2. 컬러로 인한 시선 분산을 예방하고 사진의 메시지에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

3. 전체적인 사진의 균형과 피사체의 배치 등 전반적인 구도를 매우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4. 후 보정 시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과 차가운 느을 쉽게 전환할 수 있다.

5. 무엇보다도 사진이 간결(Simple)해 진다.


만약 컬러 사진이었다면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을 흑백 사진으로 바꾸면서 전달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다. 집중을 간섭하는 복잡한 배경의 물체를 심도로 날려주고 컬러를 없앰으로써 중요한 소재를 부각할 수 있다. 이 정도의 복잡한 구조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은데 흑백이어서 가능했다. 건널목이 없는 도로를 무단횡단(?) 하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걷는 할머니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조심 조심 건너다 #1 /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서
조심 조심 건너다 #2 /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를 가로지르는 도로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복잡한 교통 표지판이 엮여 있다. 그 거리를 왕래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기차가 횡단시 위험을 알리는 노란색과 흑색의 바 또한 흑백으로 바뀌면서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깨지 않고 차분하게 프레임 주변을 맴도는 느낌이 든다. 우측의 교통 표지판 또한 사실 매우 어지럽고 복잡하지만 세로 구도의 안정된 배치, 그리고 외곽에서부터 프레임 안으로 치고 들아오는 3차, 4차의 물체들은 막아줌으로 인해 좀 더 화면 중심을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조심 조심 건너다 #3 /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서
조심 조심 건너다 #4 / 이름도 모르는 마을에서

틸트 렌즈, 혹은 미니어처 스타일 등을 적용하여 흑백 사진의 단조로움을 극복해 보았다. 수평선을 기준으로 극단적인 얕은 심도로 촬영이 가능하여 미니어처를 보는 듯한 느낌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흑백사진에 또 다른 색을 입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구도와 형상만이 남아있는 사진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명암 및 DR(Dynamic Range)에 있어서 일반 컬러사진과는 다른 감각으로 조절하여 조금 더 초현실적인 이미지도 가능하다.


흑백 사진에서의 색깔은 색다름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언뜻 보면 같지만 정확히 흑백 사진은 아니다. 채도를 매우 낮춰 놓은 사진으로 디지털 사진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쉬운 보정이다. 흑백 사진도 아니고 컬러 사진도 아니라면 이 사진은 사진이 아니게 되는 것인지...

기본이 어느 정도 갖춰진 후 가능하겠지만, 사진에서의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사진을 즐기시는 많은 분들께서 후보정에 대한 편견이 특히 많은데 무시하셔도 좋다. 디지털 사진은 후보정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것을 위해 많은 좋은 재료들이 있으므로 열심히 맛을 보셔도 무방하다.

오늘의 사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흑백이라도 농담과 색감의 차이가 미세하게 다르다. 화사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진득하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끝없이 우울한 느낌의 색감을 느끼셨다면 다소 예리한 눈을 가지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

필카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게 많은 것이 가능한 시대다. 내 과거에서 처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흑백 사진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과감히 벗어나시길. 흑백 사진은 이래야 되고. 컬러 사진은 이래야 되고 등 마치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처럼 규정하는 것은 지금 시대의 상황과 맞지 않는 이야기다. 흑백에 가까운 컬러 사진도 있고, 흑백 사진에 강한 청색 필터를 추가하여 매우 차가운 느낌의 사진도 만들 수 있다. 사진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란 말씀.


사진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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