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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귀인 Jul 23. 2016

당신에게 좋은 카메라는 없다

사진에 미치다 /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16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이엔드 똑딱이 디카를 사용하다가 한달 월급을  훌쩍 넘는 금액으로 기변 한 DSLR촬영한 사진들을 보며 높은 해상력과  심도를 보며 감동, 환희를 만끽하고 있을 때 회사 후배 녀석이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형, 옛날 미놀타 똑딱이 사진이 훨~ 낫다
리움 로툰다 / 한장을 위해 기다릴 줄은 알았던 시절

그 이후 얼마간 내 취미로서의 사진 생활은 '방황과 절망의 늪'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비참할까? 타인의 사진과 내 사진을 본격적(?)으로 비교를 하기 시작한 때가 그때부터였다.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는 사진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따라 하려고 노력했던 시간. 사진에 대한 고민보다 커뮤니티 일면이나 칭찬으로 도배되는 댓글에 훨씬 목마름을 느꼈던 시간. 말도 안 되는 거짓말과 어려운 이야기로 겉포장에 치중한 나머지 사진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에서 방황하던 그때, 중고장터에서 렌즈를 구입하고 한두 번 마운트, 다시 팔고를 반복하던 시절. 그곳에서의 중심을 잃은 방황은 결국 나의 목마름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온


사진 불감증
도쿄, 오다이바 / 무지의 시절. 그때는 채도, 구도, 선예도 운운 하면서 한편의 작품인 줄 알았다. 왜 찍었지?

몇 년 동안 카메라는 먼지만 쌓여갔고 다시는 카메라를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정확한 기억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미러리스 붐이 일었던 시절일 것이다. 잠자고 있던 무거운 DSLR을 꺼내 들고 2주간 캄보디아와 북유럽 출장을 갔고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어린 소녀 한 명을 우연히 촬영을 하게 된다. 길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염주 한 개를 1달러에 판매했는데, 나는 인상을 쓰며 손을 흔들어 구입 거부 의사를 표시했고 아무 생각 없이 들고 있던 카메라로 그 소녀를 한 컷 담았다. 자기를 모델로 셔터를 누른 나를 질타하듯 본인을 촬영했으니 그 보답으로 꼭 염주를 사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무관심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귀국 후 사진 정리의 필요성도 못 느끼고, 멋진 풍경만 몇 장 골라서 보고서에 사용하고 그 일은 그냥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PC 조립을 위해 하드를 정리하던 중 그때 촬영했던 그 소녀의 사진을 발견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죄책감으로
속죄를 위하여 / 다시 이소녀를 만날 수 있다면 진심어린 사과를 약속한다.

내가 왜 이토록 절박한 한 소녀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셔터를 누른 것일까? 내가 왜 이렇게 생각이 짧았던 것일까? 그까짓 1달러가 뭐길래 이렇게 어린 소녀의 절실한 '눈빛'을 외면했는지에 대한 자책감. 이렇듯 이 소녀의 눈빛은 나의 행동을 강력하게 꾸짖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우연히 찍힌 나를 향한  메시지가 계기가 되어 '내 사진'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마치 '폭언'과 같이 사진도 어떤 이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사진의 세계'에 다시 발을 담는다. 외면했던 취미에 다시 눈을 돌릴 만큼 나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하다. 이전에는 망나니처럼 취미 생활을 했다면, 앞으로는 사진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해보겠다는 '의지', '동기'를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이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거대한 무게로 짊어져야 하는지를 늘 생각하며 셔터를 누르게 되었다. 사진의 '기술'적인 것보다 사진가의 '의도'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이 점점 변하는 것이 느껴지더라.


카메라의 업그레이드


사진의 변화에 '카메라 기변'이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조금의 개선이 있을지 몰라도 갑자기 좋은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그것을 이해할 때까지 '후배 사건' 이후 6년 이상이 걸린 셈인데 사람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충분한 고민의 시간과 기 부여는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이제는 백장쯤 찍으면 그중에 한, 두장 정도 자신 있게 '내 사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그래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봐서는 그나마 스스로 성장했다고 믿고 싶다. 사진 관련 커뮤니티에서 하루에 한 번은 이런 질문글이 올라오는 것 같다. "OOO 하려고 하는데 좋은 카메라 추천해주세요." 이 세상에는 그저 좋은, 비싼 카메라 성능, 기능 좋은 카메라는 있지만


당신에게 좋은 카메라는 없다


설혹 지구 상을 샅샅이 뒤져서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찍으면 좋은 사진, 자신만의 사진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머나먼 환상'이다. 카메라는 여러분이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예산 내에 다른 분들이 많이 사는 제품을 구입하면 된다. 가격 범위도 넓어 고민할 필요 없다. 예산을 넘어 무리할 필요도 없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어떤 제품을 사도 몇 달, 몇 년 동안 여러분의 사진은 똑같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 적당한 카메라 구입하시고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답을 갈구한다면 카메라 구입에 대한 질문이 아닌 이런 질문이 어떨까 한다.


당신의 사진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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