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의귀인 Sep 18. 2016

피사체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사진에 미치다 / 그래 봤자, 직딩의 사진 #027

당신이 존경하는 사진가는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작가의 이름을 줄줄 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피사체와 타인을 위한 품위와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사진을 거짓으로 포장하지 않는 순수한 사진가를 존경한다고 답하고 싶다.


신들린 사진가


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유명한 분의 사진이 2014년 어느 날 뉴스에 오른다. 한그루의 노송을 담기 위해 주변의 나무를 베고 해당 나무의 일부 가지를 잘라내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자신의 사진 한 장을 위해 피사체와 주변을 무참히 짓밟고 정복해버렸다. ‘예술사진’이라는 명목으로 피사체와 주변에 해를 끼친 그의 행동은 올바른 것일까? 몇 년이 지나 전시장 허가에 대한 논란으로 다시 수면 위에 오른다.


얼마 전 손홍주 (현 씨네 21 사진부장 재직) 작가님의 강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나의 피사체인 모델을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추켜 세운다. 최고라고 이야기해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당연히 그 밑에 깔리고 나를 낮춘다. 내가 이 사진을 힘들게 찍었다.라는 사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나를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피사체가 사람이던 풍경이던, 대상을 대하는 사진가의 마음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를 수 있다. 간혹 사진 관련 소식을 듣다 보면 사진 공모전 상을 목적으로 야생의 동물들에게 해를 끼치 사건들도 종종 접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욕심과 오만에 빠져 피사체에 군림하며 악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을 낮추고 피사체를 추켜 세워 아름다운 사진을 남긴다.


오늘 소개해 드릴 사진은 집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사체를 대상으로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성내천과 그 주변의 풍경을 담담하게 담았다. 흔히 풍경 사진이라고 하면 멀리 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사진에 좋은 소재를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남들이 찾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가치를 알게 된다면 자신의 사진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낙엽 / 비온 뒤 떨어진 낙엽이 더욱 쓸쓸한 가을을 느끼게 해준다.


피사체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기


렌즈는 각자의 최소 초점 거리를 가지고 있다. 망원으로 갈수록 멀어지며 광각으로 갈수록 가까워진다. 매크로의 이름이 붙은 렌즈는 접사의 특징을 특별하게 살린 렌즈이다. 피사체에 다가가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피사체에 가까이 갈수록 얕은 심도를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프레임 주변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프레임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거리의 사물들은 흐릿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이 차츰 정리되며 사진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조리개 날의 수가 많고 각 모여진 날의 형태가 원형에 가까울수록 예쁜 보케(Bokeh) 가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두면 좋다. 조리개를 개방하면 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얕은 심도'를 통해 어느 정도 범위까지 선명하게 할 것인가? 가 결정된다. 그리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외부에서 프레임 안쪽으로 침범하려고 하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프레임 밖으로 제거된다.

흘러가다 / 장노출을 통해 물의 흐름과 배경의 수초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담았다.

추가적으로 의도적인 비네팅 (Vignetting)을 이용해 프레임 주변의 명도를 자연스럽게 낮춰 주제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할 수 있다. 이는 보정으로도 가능한 방법이다.


피사체를 정확하게 위치시켜라


어떤 위치, 어떤 각도로 포지셔닝 (Positioning) 할 것인가? 화면의 크기와 피사체 크기의 비율을 얼마큼 유지할 것인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오로지 작가가 지향하는 ‘사진의 비전’에 달려있다.

위기(?)에 처한 오리 한마리 ^^

화면을 3 분할하여 배치하거나 황금 비율 등을 많이 이용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사진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구도를 만들어도 좋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가의 깊은 마음이 사진에 얼마나 투영되어 있는가! 이것이 좋은 사진을 구별하는 하나의 기준이다.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뷰파인더로 보이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서려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피사체는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을 쏳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기오염이 극신했던 퇴근길 안개로 가득한 성내천의 주변의 모습
내 앞의 구름나무 / 파란 하늘과 구름을 배경으로 커다란 나무를

우리의 사진이 꼭 예술 사진일 필요는 전혀 없다. 모든 사진이 예술을 표방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여러분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정성껏 촬영한 아름다운 한 송이 꽃, 한그루의 나무를 담은 사진이 수천 만원을 호가하는 거짓된 예술 사진보다 더욱 의미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이미 발견한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가치를...
매거진의 이전글 저, 미러리스인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