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500년 우루크 신전, 기원전 2600년 이집트 피라미드
기원전 3500년 우루크 신전, 기원전 2600년 이집트 피라미드
아주 오래 전, 종교가 형체를 갖추기 전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한 존재였다. 천둥이 치면 두려움에 떨었고, 강이 범람하면 살던 터전을 버려야 했다. 죽음은 더욱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꽃을 올리고 도구를 함께 묻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죽음 너머 어딘가를 향한 상상이 싹트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상상력은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냈다. 태양은 생명의 근원으로 숭배되었고, 강과 숲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샤먼이 등장해 인간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이러한 의례는 단순한 주술을 넘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끈이 되었다. 종교의 싹은 바로 여기에서 태어났다.
종교가 체계화되자 인간 사회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신이 원한다"는 말은 단순한 인간의 힘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가졌다. 이 권위는 도덕과 규율, 나아가 법의 근거가 되었다. 지배자는 신의 대리자를 자처했고, 그 권력은 무력보다 더 정당하고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기원전 3500년,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루크의 중심에 거대한 계단식 신전, 지구라트가 솟아올랐다. 높이 40미터, 수천 명이 30년 동안 쌓아올린 벽돌의 산이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거대한 건물을 세웠을까? 표면적 이유는 신을 섬기기 위해서였지만, 본질은 달랐다. 종교라는 이름 아래 수만 명을 하나의 질서로 묶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 지구라트는 단순한 신전이 아니라 도시의 심장, 정치·경제·종교의 모든 권력이 모이는 장소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종교가 더욱 체계화되었다. 파라오는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호루스의 화신, 태양신 라의 아들이었다. 이런 신화적 정당성은 파라오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 그 권력의 상징이 바로 기자의 대피라미드였다. 높이 146미터, 230만 개의 석회암 블록. 피라미드는 죽음을 넘어 영원히 신으로 군림하려는 파라오의 선언이었다.
종교는 사회를 묶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였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은 모두 신의 이름으로 내려졌다. 법이 생기기 전, 종교가 이미 법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낯선 부족이라도 같은 신을 믿는다면 연대할 수 있었고, 이는 작은 부족을 넘어 국가라는 더 큰 틀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종교는 동시에 분열의 원인이기도 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집단은 적이 되었고, 종교 전쟁과 이단 숙청이 이어졌다. 종교는 사회를 하나로 묶으면서도 끝없는 갈등을 낳았다.
우루크의 지구라트는 폐허가 되었고, 피라미드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질서' 없이는 거대한 집단을 유지할 수 없다. 종교가 그 역할을 했던 시대가 지나자, 민족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인권 같은 새로운 믿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인류는 여전히 '신화' 위에 사회를 세우고 있다. 종교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발명한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장치였다. 그 변화는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