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직조 기술 ― 인류의 생활 반경을 넓히다

기원전 5000년경, 아나톨리아·터키

by 신무연 변리사

인류는 원래 따뜻한 곳에서 살았다. 동아프리카였다. 옷이 필요 없었다. 햇볕이 뜨거웠고, 밤에도 그리 춥지 않았다.

하지만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특히 밤이 문제였다. 불을 피우면 도움이 되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추위에 떨다가 얼어 죽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동물 가죽을 벗겨 몸에 둘렀다. 따뜻했다. 하지만 가죽은 무겁고 뻣뻣했다. 움직이기 불편했다. 가공하지 않으면 금방 썩었다.

기원전 5000년경, 아나톨리아(현재 터키)에서 누군가 실험을 했다. 야생 아마의 줄기를 물에 담갔다가 두드렸다. 섬유가 분리되었다. 그것을 꼬아서 실을 만들었다. 실을 엮어 천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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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의 시작이었다.

아마 천은 가죽과 달랐다. 가벼웠다. 부드러웠다. 움직이기 편했다. 빨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원하는 크기로 만들 수 있었다.

인류는 이후 수천 년에 걸쳐 다양한 식물 섬유를 실험했다. 목화를 재배해 면직물을 만들었다. 양을 길들여 양모를 얻었다. 중국에서는 누에를 키워 비단을 생산했다.

직조기가 발명되면서 생산 속도가 10배 이상 빨라졌다. 손으로 한 올 한 올 엮던 것을, 틀을 이용해 여러 올을 동시에 엮을 수 있게 되었다. 천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옷은 인류의 생활권을 극적으로 확장시켰다.

유럽의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었다. 시베리아로 들어갔다.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도 정착했다. 나중에는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기후대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옷이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적도 근처에만 살고 있을 것이다. 유럽 문명도, 중국 문명도, 잉카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직조 기술이 인류를 전 지구적 종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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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생존 수단을 넘어 문화가 되었다.

이집트에서는 아마 천을 입었다. 가볍고 시원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양모를 선호했다. 따뜻했다. 중국에서는 비단이 최고급 옷감이었다. 비단은 너무 비싸서 황족과 귀족만 입을 수 있었다.

옷감의 종류와 색깔이 신분을 나타냈다. 로마에서는 자주색이 황제의 색이었다. 자주색 염료는 지중해의 고동에서 추출했는데, 1그램을 얻으려면 고동 수천 마리가 필요했다. 엄청나게 비쌌다. 그래서 황제만 자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중국 비단은 로마까지 팔려갔다. 비단길이 만들어졌다. 장안에서 출발해 사막을 건너고 산을 넘어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수천 킬로미터의 교역로였다. 비단 때문에 만들어진 길이었다.

의복이 대륙간 교역로를 만든 것이다.

직조 기술은 인류를 아프리카에서 해방시켜 전 세계로 퍼뜨렸고, 문화를 만들었으며, 대륙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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