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9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이집트·중국 황허·중남미
기원전 1만 년 전, 시베리아 툰드라에서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매머드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한 달째 같은 무리를 쫓고 있었지만, 발자국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떠나야 했다. 그들에게 집은 없었다. 오직 다음 먹이가 있는 곳이 임시 거처였다.
삶은 철저히 불확실했다. 오늘 사냥이 성공하면 며칠을 배부르게 지낼 수 있었지만, 실패하면 굶어야 했다. 계절과 가뭄, 홍수에 따라 동물들이 이동하면 그들도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야 했다. 임신한 여성도 갓난아이를 안은 어머니도 무거운 짐을 지고 이동해야 했다. 출산 간격은 자연스럽게 4년으로 벌어졌다. 지구는 거대한 사냥터였지만, 인구는 고작 500만 명 남짓이었다.
지식의 축적도 어려웠다. 이동 생활 속에서 돌도끼 몇 개, 창 몇 자루가 전부였다. 복잡한 기술을 발명할 시간도, 짐을 들고 다닐 여유도 없었다. 모든 에너지는 다음 식량을 구하는 데 쓰였다.
그런데 어느 해, 한 여성이 생각했다. '매년 여기 와서 밀을 따는데, 아예 여기 머물면 어떨까?'
작은 실험이었다. 씨앗을 모아 땅을 파서 뿌리고 몇 달을 기다렸다.
밀이 자랐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 해에도 씨앗을 뿌리자 더 많이 자랐다. 저장할 수 있었다. 겨울에도 먹을 것이 있었다. 굳이 사슴을 쫓아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농업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극적이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일어나지도 않았다. 수백 년, 어쩌면 천 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농업이 세계 여러 곳에서 거의 동시에, 독자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사실이다.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밀과 보리를 재배했다. 중국 황하 유역에서는 조와 기장을, 양쯔강 유역에서는 벼를 길들였다. 중남미에서는 옥수수가, 아프리카 사헬 지대에서는 수수가 작물이 되었다.
각 지역의 인류는 그곳에 있는 야생 식물 중 가장 생산성이 높은 것을 선택해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업은 정착을 가능하게 했다. 더 이상 동물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한곳에 머물렀다. 집을 지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움막이었지만, 점점 크고 튼튼해졌다. 마을이 생겼다.
인구가 폭발했다. 정착하면서 여성은 2년에 한 명꼴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마을은 수백 명, 나중에는 수천 명이 사는 곳이 되었다.
농업과 함께 문명의 다른 요소들이 나타났다.
바퀴도 이 시기에 발명되었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바퀴는 수레가 되어 곡식을 나르고, 전차가 되어 전쟁터를 누볐으며, 물레방아가 되어 곡식을 빻았다. 바퀴는 교역과 전쟁의 속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화폐도 등장했다. 처음에는 조개껍데기나 소금이 교환의 매개가 되었다. 기원전 7세기경 리디아(현재 터키)에서 금속 주화가 만들어졌다. 화폐 이전의 세계를 상상해보라. 내가 물고기를 가지고 있고 신발이 필요한데, 신발을 만드는 사람은 물고기가 아니라 곡식을 원한다면? 물고기를 가진 다른 사람을 찾아서 곡식으로 바꾸고, 그 곡식을 다시 신발로 바꿔야 했다. 화폐는 이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했다. 나중에 화폐는 제국이 세금을 거두는 수단이 되었고,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주화는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도시도 이때 생겨났다. 잉여 곡식이 생기자 모두가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떤 이는 토기를 만들고, 어떤 이는 도구를 만들고, 어떤 이는 신전을 관리했다. 분업이 시작되었다. 수천 명, 나중에는 수만 명이 한곳에 모여 살았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에는 6만 명이 살았다. 이집트에는 파라오의 왕국이 세워졌다. 중국 황하 유역에는 문명이 꽃피었다.
농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국가가 탄생했고, 계급이 생겨났으며, 문명이 시작되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생계 방식의 변화가 아니었다. 인류의 생존 방식 전체가 바뀐 것이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었다. 인구가 이미 너무 늘어났기 때문이다. 농업은 판도라의 상자였다. 한번 열리자 다시 닫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