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문자 ― 기억의 영속화

기원전 3200년경, 우르·수메르

by 신무연 변리사



문자 이전의 세상에서 기록은 오직 인간의 기억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했다. 곡식의 양, 세금의 액수, 교역품의 수량이 머릿속에서 뒤섞이면 분쟁이 일어났다. 구두로만 전해지는 전통과 규칙은 세대를 거치며 왜곡되었다. 거대한 공동체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불안한 기반이었다.

기원전 3200년,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루크의 한 관리가 그 불편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는 신전에 바친 곡식과 가축을 기록하기 위해 진흙판에 그림을 그렸다. 보리는 보리 이삭 모양으로, 양은 양 머리로, 사람은 사람 모양으로. 간단하지만 혁명적인 시도였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문자, 설형문자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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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그림문자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추상화되었다. 갈대 펜으로 찍어 만든 쐐기 모양의 선들이 조합되어 수천 개의 단어와 개념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가 발명되면서 인류는 ‘선사시대’를 뒤로 하고 ‘역사시대’에 들어섰다.

문자는 행정의 무기였다. 세금을 기록하고, 임금을 계산하고, 교역품을 관리했다. 문자 없이는 도시국가도, 제국도 불가능했다. 동시에 문자는 권력이었다. 읽고 쓸 수 있는 소수의 서기들은 특권층이 되었고, 지식과 권력은 문자에 의해 독점되었다.

이집트의 신관들은 히에로글리프를 독점하며 파라오의 권력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상나라의 왕들은 갑골문자로 신의 뜻을 물었다. 바빌론의 함무라비는 법전을 돌비에 새겨 지배의 근거를 ‘영속화’했다.

그러나 문자의 가장 큰 혁명은 기원전 1200년경 페니키아인들의 알파벳이었다. 22개의 기호만 익히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었다. 문자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대중의 도구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 알파벳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오늘날 전 세계가 사용하는 문자 체계의 뿌리가 되었다.

문자는 기억을 영속화했다. 인간의 언어는 사라지지만, 문자는 수천 년을 견딜수있다. 우리가 4천 년 전 함무라비 법전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이유다. 동시에 문자는 지배의 도구이기도 했다. 라틴어는 중세 교회와 학문의 언어였고, 한문은 동아시아 지식인의 공통어였다. 평민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문자로 가질 권리조차 없었다.

오늘 우리가 책을 읽고, 법을 배우고,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은 모두 5,200년 전, 우루크의 한 관리가 진흙판에 남긴 첫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DNA다. 그것은 생각을 시간에 묶고, 지식을 세대를 넘어 전달하며, 인류를 문명으로 이끈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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