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000년경, 우루크·메소포타미아 / 멤피스·이집트
기원전 3000년경, 우루크·메소포타미아 / 멤피스·이집트
도시 이전의 삶은 단순했다. 마을은 수십, 많아야 수백 명이 모여 사는 규모였다. 움막이나 진흙 오두막에서 살았다. 비가 오면 새고, 추우면 떨었다. 건물은 일시적이었다. 몇 년 지나면 무너졌다.
하지만 기원전 3200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인류 최초의 도시가 탄생했다. 우루크였다. 인구 4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한 정착지였다.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의 다섯 가지 혁명적 발명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었다.
불이 음식을 익히고 도구를 제작했다. 농업이 정착을 가능케 하고 잉여를 생산했다. 바퀴가 먼 곳의 곡물과 물자를 도시로 운반했다. 문자가 복잡한 거래와 세금, 법을 기록하며 행정을 가능케 했다. 종교가 수만 명을 하나의 보이지 않는 질서로 묶어냈다.
이들이 모두 갖춰졌을 때, 비로소 수만 명이 한곳에 모여 사는 '도시'가 가능해졌다. 도시는 이 모든 발명의 융합체였다.
그리고 도시에는 새로운 발명이 필요했다. 건축이었다.
거석에서 벽돌로 - 건축 기술의 진화
초기 인류는 동굴에 살았다. 자연이 만든 공간이었다. 나중에는 나무와 짐승 가죽으로 움막을 만들었다. 비바람을 막을 수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농업 혁명 이후, 정착이 시작되면서 영구적인 건물이 필요해졌다. 처음에는 돌을 쌓았다. 기원전 3000년경, 유럽과 아시아 곳곳에 거석 기념물이 세워졌다. 영국의 스톤헨지, 한국의 고인돌. 수십 톤짜리 바위를 옮겨 세웠다. 어떻게? 수백 명이 통나무 굴림대로 밀고 당겼다. 집단 노동력의 동원이었다. 권력의 탄생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하지만 거석은 한계가 있었다. 무거웠다. 운반이 어려웠다. 큰 건물을 짓기 힘들었다.
메소포타미아는 다른 길을 택했다. 돌이 부족했다. 대신 진흙이 풍부했다. 진흙을 틀에 넣어 말렸다. 벽돌이었다. 가볍고, 균일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수천 개의 벽돌로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우루크의 중심에는 높이 40미터에 달하는 지구라트가 서 있었다. 수백만 개의 벽돌로 쌓아 올린 계단식 탑이었다. 단순한 신전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조직하는 상징이었다. 멀리서도 보였다. 신의 집이자 왕의 권력을 보여주는 기념물이었다.
이집트 - 돌의 귀환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달랐다. 나일강 주변에 양질의 석회암이 풍부했다. 멀리 남쪽 아스완에는 화강암이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돌을 선택했다.
기원전 2600년경, 기자에 대피라미드가 세워졌다. 높이 147미터. 230만 개의 돌 블록. 평균 무게 2.5톤. 어떻게 만들었나? 구리 도구로 석회암을 자르고, 통나무 굴림대로 운반했으며, 경사로를 만들어 끌어올렸다. 2만 명이 20년 동안 일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파라오의 신성함을 증명했고, 이집트 전체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보여줬다. 4500년이 지난 지금도 서 있다. 영원을 추구한 건축이었다.
도시의 탄생 - 계획된 공간
건축 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시가 가능해졌다.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수만 명이 살 공간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우루크에는 신전 구역, 궁전 구역, 시장 구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신전 주변에는 제사장과 관리가, 바깥쪽에는 장인과 농부가 자리했다. 사회적 위계가 공간으로 시각화됐다.
이집트의 멤피스는 나일강 삼각주 입구에 세워졌다. 강을 장악하는 정치적 수도였다. 상·하 이집트를 통합한 파라오의 권력이 이곳에서 출발했다.
기원전 1800년경, 바빌론은 도시 계획의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함무라비 왕은 격자 형태로 도시를 재건했다. 상업 지구, 수공업 지구, 주거 지구가 구분됐다. 넓은 대로가 도시를 가로질렀다. 현대 도시계획의 원형이었다.
도시에서는 '전문화'가 가속화됐다. 누군가는 농사만, 누군가는 도자기만, 누군가는 금속 가공이나 직조만 했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기술은 정교해졌다. 우루크 발굴에서는 원통형 인장, 곡물 계량 용기, 청동 저울이 발견됐다. 복잡한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도시는 양날의 검이었다. 화려한 궁전과 신전 이면에, 빈민가는 열악한 위생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부자와 빈자가 같은 공간에 살았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았다.
그럼에도 도시는 성장했다. 농촌에서는 농사만 지을 수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상인·장인·관리·병사 등 다양한 기회가 열렸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교환됐다. 설형문자가 우루크에서 발명되고, 법전이 바빌론에서 성문화되고, 피라미드 건축술이 멤피스에서 완성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도시야말로 발명의 산실이었다.
오늘날 이라크 와르카(고대 우루크)의 지구라트 폐허에 서면 5천 년 전 도시민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이 만든 도시의 DNA는 지금도 살아 있다. 지금의 도시들도 그때와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다. 사람들이 모여 꿈꾸고, 부를 만들고,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 그것이 도시이며, 그것이 문명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