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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빛 Sep 06. 2022

담배와 물만밥


나의 증조할머니는 엄청난 골초이셨다.


90살이 넘는 연세에도 꼭 하루 한갑씩을 피셨는데, 게다가 늘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단 위에서 쪼그려 앉아 피셨다(30대인 나도 쭈구려 앉으면 다리가 그렇게 저린데, 강철체력이셨던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나는 외할머니의 짜증섞인 사자후와 궁시렁 거리는 증조할머니의 웅얼거림을 들으면서 자랐다. 주로 레파토리는 '아 애도 있는데 담배 좀 옥상가서 펴셔요!'와 '담배 좀 그만 피셔요!'인데 외할머니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실행된 적이 없다. 증조할머니는 생각보다 꿋꿋하셨다. 


손녀딸인 나를 대하던 외할머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익숙해졌다가 사자후를 들으면 깜짝 놀랬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증조할머니가 귀가 안좋으셔서 그랬던 거였다(어쩌면 근데 1/3정도는 모른척 하신 걸 수도 있다).


약간 서늘한 증조할머니의 방에 들어서면 오래된 장농냄새와 희미한 나프탈렌 향과 함께 화투를 차칵차칵 섞으시는 소리가 났다. 증조할머니는 늘 혼자 신문지 위에 화투를 치시곤 했는데, 내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드디어 대결 상대가 생겼다는 기쁨의 반짝임을 할머니의 눈에서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하지만 안타깝게도 8살이 이해하기에 화투의 룰은 어려워서 기쁨은 오래 못갔다).


그렇게 늘 전쟁처럼 대립하던 외할머니와 증조할머니도 평화협정을 맺는 유일한 장소는 밥상이었다. 


매일 그렇게 성을 내시던 외할머니는 시어머니의 밥상을 하루라도 안차리신 적이 없었고, 흰쌀밥 옆에는 훼미리 주스병에 가득 담긴 물이 있었다. 증조할머니는 하루에 2리터 넘는 물을 마셨고, 식사때 마다 물을 가득 담아 밥에 말아드셨다. '저러니까 오래사는 거지. 물이 좋긴 좋은 거라니까'라고 투덜대시면서도 부엌에 가면 외할머니가 미리 담아놓은 물이 항상 열 병 남짓 있었다.  


증조할머니는 그닥 다정한 분은 아니었다.


크게 반응도 없으셨고, 치아가 얼마 남지 않으셔서 할머니의 말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필요한 말만 하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나를 빤히 바라만 보셨던 적이 많으셔서 어린 나는 무섭다는 생각도 가끔 했었다. 


하지만 증조할머니와 나도 모종의 연대를 형성하기도 했는데, 그건 담배심부름이었다. 하도 외할머니가 타박을 많이 하니 증조할머니도 조금은(?) 눈치가 보이셨나 보다.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몰래 담배를 공수하고 싶으실 때 마다 스리슬쩍 손짓으로 날 부르시고는, 멀리 있는 안방에 외할머니가 잘 있나 눈으로 한번 쓰윽 보고 '담배 하나, 그 순댓집에서 사와라'라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심부름으로 나는 담배 한 갑과 한 보루 개념을 처음 배웠다. 시장 옆에 살아서 내가 누구 할머니 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으므로, 할머니 심부름 왔어요~하면 담배도 아이에게 선뜻 주는 그런 시절이었다.


어렵사리 공수해 온 흰색 박스 뭉치를 흡족하게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입꼬리, 그리고 그 심부름의 댓가로 얻었던 박하사탕과 잔돈의 맛은 달콤했다(나중에 외할머니가 알아내시고는 엄청나게 난리가 났지만).


증조할머니는 100살을 넘기고 101살에 돌아가셨다.


어린 나는 드디어 외할머니가 싸움 상대가 사라졌으니 좋으시겠구나 했다. 하지만, 적막해진 집에서 다시 밥상을 차리시는 외할머니는 그동안 어떻게 그렇게 잔소리 하셨는지 신기할 정도로 말수가 적어지셨다.


지금은 리모델링해서 바뀌어버렸지만, 가끔 할머니 방의 옅은 담배냄새와 오래된 장농냄새, 그리고 차칵차칵 소리가 나던 화투소리가 문득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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