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삐딱하지 않게, 나에게도 스담스담~ 다독임이 필요해...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공격하여 힘들게 하는 것은 흔히들 외부적 요인에만 있다고 단정할지 모른다.
그래서 내안에 자기 파괴자가 살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하기도 한다.
프로이트 S.Freud는 본능에는 ‘생의본능’과 ‘사의 본능’의 2종류가 있다고 했다.
에로스(Eros)는 생의 본능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파워의 원천이다. 티나토스(Thanatos)는 죽음의 본능으로 자기파괴의 충동이다.
이 티나토스에 의해 사람에게는 자기파괴의 충동이 있는데 우리들은 생의 본능 에로스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지만 죽음의 본능 티나토스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 파괴자는 우리 무의식 어둠의 그늘 속에서 슬슬 작동한다.
성인이나 청소년 등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사람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작동한다.
지인은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한참 신체와 함께 자아정체성도 성장하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의 좌충우돌 현장을 책임지는 담임교사를 맡았다고 한다.
반 아이들 중 7명이 그룹으로 유독 친하게 지내며 항상 몰려 다녔는데 그 날도 어김없이 함께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테이블이 6명 단위로 앉을 수 있어 그 중 한 명이 번갈아 가며 다른 테이블에 떨어져 앉아 점심을 먹던 중, 한 친구가 “왜 우리는 홀수일까?” 라는 한마디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친구는“내가 떠나면 되겠네…”라고 어처구니없는 자신만의 해석을 내린 것이다.
뜬금없는 그 친구의 말에 다른 친구들이 모여 그 친구를 잡으려고 상의하는 모습조차도 자신을 내 몰려는 의도로 오해하는 소통과 공감능력마저도 마비시켰다.
함께 하면 더 좋을텐데 홀수여서 한 명만 외떨어지니 안타깝다는 의미였을텐데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의미로 원인분석을 잘못했다.
결국 낮은 자존감은 부정적으로 자아 확정함으로써 파괴적인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제3자의 관점으로 보면 객관적 해석이 되며 안타까움이 든다. 아직 나이가 어리므로 자아발달이 덜 되어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종류의 비슷한 일들이 성인이나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딸 친구들 중 한 명이 사소한 문제로 혼자 오해하여 그룹에서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감정과 충동이 통제되지 않는 자기조절력이 부족했음이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 미숙한 감정으로 아픈 경험이 있었으며 아마 그 친구들도 뒤늦게 후회하며 가슴을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야릇한 저질 정치군단 같은 질 나쁜 그룹의 상황이라면 미련 없이 과감히 떠나는 것도 현명한 대처방법이다.
소속감이라는 미명하에 외톨이가 될까 두려워 상처 주는 집단에 연연하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방어벽이 되어 줄 수 없다.
크리스 코트먼, 헤롤드 시니츠키의 공저 ≪감정을 선택하라≫에서
“두려움은 우리에게 파괴자를 불러들일 기회를 제공한다. 삶에서 특정 상황이나 관계를 헤쳐 나갈 자신이 없을 때 파괴자를 호출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실패하거나 시도하지 못했을 때 그 상황을 모면하거나 핑계 구실을 만들어 탈구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온갖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파괴자는 마음속에서 실수나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파괴자를 이용한다.
더 큰 실패를 겪지 않도록 보호하고 자기는 뭘 해도 안 되리라고 믿는다. 아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실패를 모면하게도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능력 발휘를 못한다는 자기 인식을 강화하는 데도 기여한다.
파괴자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에 꼼작 못하게 가둬 둔다, “난 해 봤자 실패할 게 뻔해, 그러니 해 보지 않고 그냥 능력 발휘 못하는 인간으로 살 거야.”
그러나 파괴자는 능력 발휘를 못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직업이나 관계에서 승승장구를 하다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오히려 미래의 실패를 더욱 두려워하게 될 수 있다.
파괴자가 우리의 노력을 전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악한 전략을 인식해야 한다.
지레짐작과 잘못된 판단에 빠져 두려움이 몰려올 때 사람들은 오해를 넘어 파괴적인 충동이 일곤 한다.
이런 생각 자체가 남이 자신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삐딱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 이성적 판단을 못하고 오해로 인한 스스로 자처한 아픔인지 살펴봐야 한다.
또한, 매사 자신을 평가절하 함으로써 누구보다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음으로 낮은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아프게 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때로 곤경과 비난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찍었을 때 우울함은 한동안 자신을 괴롭힌다.
다시 정상적인 위치로 회복되는 시간이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 사람도 기질에 따라 다르다.
이런 회복탄력성은 인생의 바닥에서 바닥을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다시 튀어 오르는 비인지 능력 혹은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인생의 여정이란 자고로 아프고 힘든 일이 비일비재 할진데 누군가로부터 위로 받고 치유 받으려 구걸하지 말자.
먼저 자신을‘스담스담’힘들었냐고 다독이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불행한 사건이나 역경으로 웅크려들었던 것이 도리어 더 높이 튀어 오르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