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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Nov 21. 2020

아보카도계란김밥, 부드러움을 드려요

[02] 2020.11.21

우리 엄마는 김밥을 참 잘 싼다. 시금치와 햄, 맛살과 계란, 단무지가 예쁜 색을 뽐내며 적당량의 밥과 함께 돌돌 말린 김밥. 종종 밥을 밖으로 해서 싸거나 참치를 넣은 김밥들도 만들었지만, 대체로 기본에 충실한 버전이었다. 엄마 김밥은 군더더기가 없고 단정하다. 마치 본인처럼. 이제는 독립한 자식들이 집에 왔다 돌아가는 날에 종종 김밥을 쌌다. 잘 챙겨 먹지 않는 딸과 운전하는 아들, 며느리와 손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음식이 김밥이었기 때문이다. 맛있고 간편한.


하지만 스스로 김밥을 싸 보면 김밥이 절대 간편한 음식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시금치를 다듬고 데쳐 간을 해야 한다. 계란은 얇으면 찢어지고 두꺼우면 퍽퍽하다. 밥의 양과 간격이 동일해야 내용물이 센터에 가지런히 놓이는 법이다. 과정을 알면 알수록 김밥 한 줄에서 발견하는 감정은 수없이 많다.


서울역에는 아보카도계란김밥을 파는 곳이 있다. 세기의 맛이라거나 완벽하게 새로운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아보카도의 부드러움이 차가운 밥과 김의 밋밋함을 단번에 밀어내며 쑤욱하고 넘어간다. 생각보다 양이 많아 한 팩을 다 먹으면 금세 배가 찬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이 김밥을 사서 기차를 탄다. 대체로 기차의 도착지가 집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아보카도계란김밥과 함께 부드럽고 다정한 엄마의 김밥을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은 친구와 함께 이 김밥을 먹었다. 가감 없이 나눈 대화가 아보카도와 같은 다정함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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