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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Nov 27. 2020

고통, 살아있다는 감각

[05] 2020.11.27

마흔을 앞두고 매일이 불안이었다. 마흔 즈음에는 뭔가가 완성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엉망진창이라서였다.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제발 어느 정도는 통제 가능했으면 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는 ‘아, 모르겠다 뭐라도 되겠지’ 상태가 됐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내일모레’라는 느낌이라서.


몽골 여행을 비롯해 여러 세션들을 경험했던 라이프쉐어는 이런 나의 취약점을 곧잘 드러내는 곳이었다. 올해를 마무리하며 다이빙클럽 3 시즌을 신청했고, 오늘은 ‘죽음에서의 영감’ 세션에 참여했다. 태어나서 101살까지의 여정을 글과 말로 나누는 시간이었다. 분명 힘든 때들도 있었건만 지난 시간들은 그 시간을 함께 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으로 기록됐다. 마흔 이후의 삶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가능하면 삶의 변화를 잘 받아들이길 바라는 바람으로 가득했다.


101살, 나는 죽었다. 지독하게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 갖고 있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만큼은 사라져 있었다. 과거를 행복하게 기억하고, 몸과 마음의 변화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용기가 된 셈이었다. 지금의 내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지는 않다는 안도감도 함께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내내 나를 괴롭히던 생리통이 다시 강하게 느껴졌다. 10cm도 채 안 되는 기관이 매달 나의 수십 시간을 장악한다는 것에 화를 자주 냈는데, 그 통증마저도 살아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삶이란 살아도 죽은 것이겠구나. 생생한 삶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고통 역시 그랬다. 가능하면 아프지 않길 바라지만, 그마저도 삶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날도 많아지길 바란다. 그래도 난 일흔다섯 즈음에는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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