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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Nov 26. 2020

커피 리필의 마음

[04] 2020.11.26

돌이켜보면 프리랜서를 시작한 2017년은 방랑의 시기였다. 일의 중심을 찾느라 헤매던 것은 물론이고, 8년을 살았던 합정에서 망원으로 이사를 온 해이기도 했다. ‘집에서는 일이 안 된다’라는 핑계로 동네의 온갖 카페를 전전했다. 작은 카페들은 각자의 색을 뽐냈지만, 일을 하기에는 너무 좁거나 춥거나 불편했다. 아지트라 삼을 만한 카페를 만나기까지는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마핑파’는 드물게도 4인용 테이블 10여 개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운영되는 넓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오전 11시라는 오픈 시간, 해가 잔뜩 들어오는 넓은 창,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초록 식물들과 예쁘고 맛있는 브런치. 심지어 집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을 나는 당연하게도 사랑했다. 2년이 넘도록 여기서 원고도 쓰고 회의도 하고 미팅도 했지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다음 여행지를 떠올리기도 했다. 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달려 나와 빗소리가 섞인 음악과 함께 카푸치노를 마셨다.


오늘도 도통 안 풀리는 원고를 들고 이곳을 찾았다. 적당한 소음과 따뜻한 햇빛의 도움으로 한 문장씩 겨우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때 빈 커피잔을 본 사장님이 커피 한 잔을 더 내어주었다. 주문을 하며 가끔 안부를 묻기도 했지만, 우리는 대체로 ‘단골’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알은체를 하지 않는 사이였다. 그 적당한 거리 사이로 사장님은 종종 대가 없이 커피를 채워주고 디저트를 선뜻 건넸다. 조용하고 은근한 배려는 부스터가 되곤 했다. 잠깐의 미소를 지은 뒤 더 많은 문장을 쓸 수 있었고, 읽어야 하는 자료들이 마냥 의무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따뜻하게 채워진 커피 한 잔은 고마움이고 응원이며 때때로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나는 선물 같은 타인의 다정함을 곧잘 잊어버린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 할지라도, 가능하면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 기억을 다시 꺼내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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