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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Dec 06. 2020

만지는 기쁨

[09] 2020.12.06

요즘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비언어의 영역이다. 언어를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말과 글이 편하지만, 같은 의미로 완벽에의 강박이 있어 늘 시작이 어렵다. 일이 아닌 글은 당연히 더 귀찮고.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라고 여기는 것은 기존의 방식이 익숙하기 때문에 글과 말에 내 감정을 잘 숨겨놓는다는 것이다.


필터링 없이 표현되는 새로운 방법을 찾다가 특별한 규칙이 적은 움직임 수업을 접했다. 입은 다물고 때로는 눈을 감고 호흡과 주변의 소리와 온도에 집중하는 시간들. 복잡한 머릿속은 비워졌다가, 몸이 움직이는 방식에 맞춰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온다. 다리가 뻐근해 다리를 위주로 움직이다 보면 어딘가로 나아가려는 나를 발견한다. 무언가를 헤치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발목을 풀어주기도 한다. 나의 부정적인 면과 변화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다짐은 가슴을 활짝 열고 해를 팔로 안아 받아내고 다시 바닥에서 무언가를 길어내 온전히 흡수하는 움직임으로도 나타난다. 움직임을 지켜본 사람은 내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몸은 마음을, 마음은 몸을 지배한다.


수업 중 타인의 등에 손을 갖다 대는 시간이 있었다. 손바닥을 통해 상대의 호흡이 나에게도 느껴져 숨을 맞춰보았다.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이 함께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게 꼭 음악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손에는 스튜디오의 찬 공기를 이겨내는 온기가 전해져 왔다. 잠깐의 터치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상대와의 적정한 거리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 보고 나 역시 안전하게 기대 보는 경험으로 물리적인 만남과 접촉만이 가장 라이브한 것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것은 위안이자 용기이며 사랑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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