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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경진 Dec 09. 2020

새로운 장래희망

[10] 2020.12.09

많은 것을 혼자 한다. 편해서다. 하지만 언제나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여러 명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다수의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하나의 커다란 목표를 지향하며 나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케스트라는 이 매력을 단 번에 보여주는, 그래서 언제나 나를 가장 설레게 한다.


클래식 음악은 정말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물리적인 숫자가 만들어내는 웅장함에 먼저 압도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들리는 분주함에 마음이 간다. 서로 다른 소리들은 조각조각 빈구석을 채우고, 작은 소리들이 모여 큰 소리가 되고, 이 악기가 저 악기를 든든하게 밀고 나간다. 모두에게는 각자가 해내야 하는 몫이 있고, 같은 마음으로 움직였을 때만이 증폭되는 에너지가 있다.


나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면 언제나 작은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트라이앵글 같은. 전면에 나서는 소리보다는 어딘가에 묻혀 독주를 빛나게 하는. 전시를 보러 가서도 그림 자체가 아닌 프레임을 보던 때가 있었다. ‘나도 여기에 있다’라는 외침이 가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알아채 주지 않는다면 모든 게 의미 없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내 자리는 사라지지 않음에도 변화를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상황과 마음을 미워했다.


https://youtu.be/GPtfcaZOd24

오늘 아침에는 서울시향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캐럴을 들었다. 타악기의 빠른 비트로 시작되는 ‘징글벨’을 듣자마자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가 웃으며 힘차게 연주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흥겹고 풍성한 음악 안에서 트라이앵글 소리를 발견했다. 빠르고 경쾌하게 귀를 간질이는 소리. 모두 그곳에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케스트라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른 소리를 잘 듣고, 명확하게 내 자리를 지키고, 상황에 맞춰 자연스레 음량을 조절하고, 내 감정을 내가 가진 도구에 잘 실어 보내는, 그리하여 편안함과 따뜻함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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