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2021.03.05 종점 여행
5층 이상의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1층과 1.5층, 그리고 4층에 살았다. 초6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가 유일하게 아파트에서 산 시기였지만,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4층이었다. 살아본 적이 없으니 고층 아파트에는 가본 적도 별로 없다.
7013A번 버스의 끝은 거대한 아파트들이 우뚝 서있는 고양시였다. 종점이 서울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거니와, 이곳이 개발 중이라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20층은 되어 보이는 수십 동의 아파트로 가득한 동네. 버스가 ‘포렛’, ‘리슈빌’, ‘S클래스’, ‘헤링턴 플레이스’ 같은 이름의 대단지 아파트를 찍고 가길래 카페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카페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잘 닦인 도로와 널찍한 인도, 인근의 산이 쾌적하게도 보였다. 단지마다 버스정류장이 있고,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도 착착 준비되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아갈 이들에게는 모든 게 가능한 동네이기도 할 것 같았다. 아직 분양이 끝나지 않은 세대가 많아서인지,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가장 많이 보였다. 그다음에는 각종 학원들과 병원.
어쩌면 가게라는 건 살아가는 이들의 방식을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정돈된 산책로와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과 같은 편리하고 깨끗한 주변 시설들이 내 눈에도 탐났지만, 따뜻한 봄볕에도 높다란 건물들과 거대한 단지의 입구, 번쩍이는 주차장 차단 바엔 손끝이 시렸다. 구석구석을 보고 온기를 느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겠지. 오늘은 어떤 종류의 이질감만 잔뜩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