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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민 Jun 23. 2021

인간실격 리뷰

나랑 같이 걸을래

 인간은 자신 스스로가 ‘실격’이란 딱지를 걸어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가정이 또는 사회가 걸어준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대해서 아직까지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아니,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자율과 타율이 균형 있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실격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안쓰러웠다. 책의 주인공인 요조는 웃음을 잘 짓지 못한다. 웃어도 마치 어딘가 어색하게 보였다. 책 후반부에 그는 자신이 웃음을 지을 때 괴로운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니 남들에게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도리어, ‘비난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둘러 쌓여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면에서 감정과 외적인 행동에 대한 충돌로 인해 힘들어했지만, 과연 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고, 그가 온전히 피해자만은 아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실된 이야기를 용기 있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다른 이들이 이해를 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 용기를 냈어야 했다. 만일, 그가 이런 사실들에 직면했다면 27살에 흰색 머리칼을 갖은 노인처럼 안보였을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당당함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하이데거와 조커가 생각이 났다. 하이데거는 자신 스스로를 도구화하지 않고 주도적인 삶의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야 말로 (현) 존재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요조는 과연 자신 스스로를 존재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저 남을 웃음 짓게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했을까?

 

 반대로, 그가 남을 웃음 짓게 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황에 자신을 꾸겨 넣은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란 흐름에 나라는 사람이 같이 흘러간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호아퀸 피닉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조커’를 보면 정신질환을 겪고 있지만 꿈을 갖고 살아가는 한 남성의 타락의 과정을 낱낱이 묘사하고 있다. 그런 묘사들 중에서 그가 조커가 되기까지 시대상황이 큰 작용을 했다. 정신과 담당의사, 버스 안 모녀, 직장동료, 길거리에서 자신을 때린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까지 그의 주위에는 그의 진실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질문했던 문장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인간은 자신 스스로가 ‘실격’이란 딱지를 걸어준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가정이 또는 사회가 걸어준다고 생각하는가? 이 말을 내 삶으로 가져왔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딱 하나였다. “내게 오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그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들어주자” 또한 “사람을 나의 편견에 꾸겨 넣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보자”였다.

 

 사람 모두가 다 긍정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꾸며야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그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 세상에서 같이 걸어가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또 다른 ‘요조’나 ‘조커’가 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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