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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민 Jul 30. 2021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노예근성이 아니었다

 

 니체는 말한다. ‘고통과 절망을 겪지 않으면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노예근성’은 자신이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의견 하나 없이 선택하는 바보 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신’이라는 존재를 찾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책을 읽었을 때를 생각나게 했다. 철학, 인문학, 심리학 고전문학 등 ‘문. 사. 철’의 영역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이때 경험을 통해서만 경험하게 되는 ‘신’을 찾기보다는 이성에게 호소하며 신을 찾는 노력을 했다. 그때 그 습관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항상 원인과 본질만을 찾게 되었다. 사실 인간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나는 뭔가 막혀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벽이라고 해야 할까? 벽이라고 한다면 마치 내가 넘을 수 없는 ‘10m짜리 벽’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크기의 벽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벽을 내가 만나고 난 후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열정과 목표들이 사라졌었다. 도저히, 이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어렴풋이 내게 느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다름 아닌 뭔가 변화가 되기를 나 스스로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된 습관으로 나는 다시 묻는다. “왜?”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뭔가 합당하면서 논리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러쿵저러쿵” 여러 철학자들의 위상을 빌려 그들의 가치관으로 내 가치관을 바꿔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내가 진정 원하는 "왜"와 더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느낌은 내 인생을 지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연하게 나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에 제목을 보면서 “누가 옮기긴…? 누가 옮겼더라?”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분명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완전히 잊었다. 급하게 나는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책 내용이 아니라 A.J. 크로닌의 인용구가 나를 먼저 만났다. 그리고, 내 생각을 흔들어 놨다. 인생은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도록 시원하게 뚫린 대로가 아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막다른 길에서 좌절하기도 하는 미로와도 같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개척한다면 신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 길을 걷노라면 원하지 않던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폭풍이었고 과거의 낡은 습관을 파괴시키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그리고, 스니프, 스커리, 헴 그리고 허를 만났다. 책 내용은 치즈가 영원하지 않기에 스니프, 스커리는 매일같이 치즈에 변화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러나, 헴과 허는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치즈가 다 고갈이 되었을 때쯤 스니프와 스커리는 다른 치즈들을 찾기 위해서 미로 속에 들어가 치즈를 찾아냈고, 허도 고심 끝에 움직여 치즈를 찾아냈다. 그런데, 그 후 헴은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의 피날레가 되어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갑자기 퍼즐 맞춰지듯이 맞추어졌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왜 벽에 서있었는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이성으로 ‘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내 마음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경험과 타당하고 합리적인 이성이 두 날개가 되어 있었음을.. 다시 말해서 경험과 이성이 내가 가진 마음에 믿음이라는 것을 통해 하나로 같이 묶이게 되었다.(지식의 역사에서는 ‘믿음’은 확실한 지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신’의 존재에 대해서 더 이상 번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다음 치즈로 옮겨야 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과거에 사로잡혀서 텅 빈 치즈 창고가 마치 ‘10m’ 짜리 벽과 같다고 느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벽은 높이만 높았지 넓이는 별 볼일 없었다. 옆으로 돌아가 앞으로 난 새로운 길을 걸으면 됐었다. 그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치즈’를 다 먹었다는 것을.. 하지만, 헴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변화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때가 필요하지만 민감하게 반응하여 변화의 시기 때 변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 중에 혹시나 삶에 변화를 맞이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매우 짧은 페이지지만 깊은 지혜가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가져다준 폭풍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미로 위를 ‘훨훨’ 날 수 있는 두 날개를 나는 이 책을 통해 달지 않았나 생각한다. 변화하는 원인 그리고 본질을 찾는 질문과 변화에 민감하여 변화에 몸을 맡겨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유연성이 균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내 인생 참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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