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민 Jun 19. 2021

하나님을제한하지 마라 리뷰

우. 만. 책 북클럽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이지만, 개인적으로 간증 관련 서적을 좋아하지 않았다. 간증 관련된 책을 읽고 있으면 그저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가진 입장으로 최대한 간증 책들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좋은 나로서 '그래도 한 번쯤은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라'라는 어떤 목사님의 간증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읽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 구절에 멈춰 섰는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은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것에 대하여 왠지 모르게 반박하지 못하는 입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나의 생각을 잠식해갔다. 그리고, 나의 생각을 온전히 지배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질문은  '나는 창조주를  나정도로 밖에 보지 않은가?' 피조물을 만든 창조주는 못해도 만들어진 자들보다 강할 것이며, 지혜로울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창조주보다 피조물은 높지 않다. 고린도전서 1장에 이런 말도 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이전에 나는 이것들은 제대로 깨우치고 있다고 살았다. 근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생각은 온전히 변했다. 그 생각은 바로, 나 스스로가 하나님을 깨달았다는 자만이었으며, 세상과 하나님의 넓음을 볼 줄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생각들과 함께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이어갔다. '나는 하나님과 무엇으로 싸우고 있는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러다가 결론적으로 나는 내 안에 하나님을 제한하는 어떤 신념(念)을 가지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념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를 생각했다. 

 

 먼저, 신념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관찰해보았다. 일단 신념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보았다. 신념은 믿을 신(信)과 생각할 념(念)이 합쳐진 합성어로서 그 뜻은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믿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여 내가 동의가 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는 행위가 바로 신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념은 어떻게 형성될까? 신념은 자신의 생각이 옳거나 가치 있다고 믿을 때 형성된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행동으로 표출하게까지 하는데 대게 이런 것들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결국, 신념과 행동은 땔 수 없는 유착관계이다.


 만약, 우리의 삶 속을 들여다보는 눈이 있다면 우리의 행동이 습관으로서 형성되어 있는 행동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동 습관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수용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찰스 두히그는「습관의 힘」을 통해서 습관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총 3단계가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뇌가 특정한 행동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두 번째는 그것에 대한 '반복행동'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신호와 반복행동에 꾸준히 기억할 만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스스로 보상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습관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보상이 되는 것들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행동이다. 

 

 습관의 형성 단계를 정리하자면, 자신에게 보상이 되고 가치가 있을만한 생각들을 몸이 기억하게 하여 그것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한다. 이것이 신념과 습관의 단단한 관계도이며 선하든 악하든 계속해서 돌게 하는 순환과정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을 제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신념의 행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제한적인 것과 신중한 것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신중하다는 것은 어떠한 일을 완성하기 위해 천천히 진행하지만 '하나, 하나' 확실하게 올바른 방향을 위해 진행하는 것이라면, 제한하는 것은 그 일에 대하여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라내는 것이다. 물론, '신중함'과 '제한'은 서로 긴밀한 관계이지만 따로 보았을 때 '제한'보다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잘라내는 것이고, 그렇게 잘라냄으로써 할 수 있는 일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지고 있는 신념 자체가 제한적이라면 본인의 행동도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념 속에 자리 잡은 제한성과 한계성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내면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이다. 겉으로는 누구나 좋은 생각들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이 바뀌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기억한 지식일 뿐이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생각을 바꾸어 신념을 바꾸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과 지식이 필요하다. 즉, 나 스스로에게 질문함으로써 자신을 알아가 좋지 않았던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맹자는 인생을 살아갈 때 '반구저기'하라고 이야기한다. 즉,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끊임없이 이어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중요한 것은 좋은 가치관이 되는 성경과 책들이 필요하고 좋은 공동체가 있어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앙인으로서 매번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선을 이루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곳에서 넓게 이루기를 생각한다. 그런 입장에서는 분명하게 얘기하고 싶다. 하나님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고 도리어 마음의 한계에 대한 사슬을 풀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제한 없이 우리 세상에,  우리 가족에, 우리 친구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총, 균, 쇠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