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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라 Jun 10. 2022

1. 기자 vs 홍보 (7) 인간관계

직장 생활하며 생기는 인간관계에 대해 기자와 홍보인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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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라의 픽 기자 < 홍보

“너 개인을 보고 챙겨주는 줄 아냐? 회사(언론사) 때문이다.” 기자로 현장을 누빌 당시 소위 자부심이 넘쳐 있는 기자에게 전직 기자였던 선배들이 종종 던진 말이다. 마치 기자 개인이 잘 나서 외부에서 대우와 인정을 받는다고 착각하지만 기자직을 내려놓으면 외부 반응이 180도 바뀐다는 것이다.


취재원은 내 이름이 아닌 명함의 매체명을 본다


100%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공감된다. 필자도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홍보로 전직한 이후 취재할 당시 만났던 지인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 통화 또는 만남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물론 필자의 기대치가 커서 일수도 있다. 전직 후에도 여전히 기자 때처럼 대우할 것으로 기대했다.

단적으로 기자 시절에는 설령 최고위 임원이라도 점심이나 저녁 약속을 잡으면 취재원들이 필자가 있는 곳으로 왔다. 기자직을 내려놓으면 그렇지 않다. 적당히 중간에서 자리 잡거나 아니면 서로의 연배를 고려해서 장소를 정하게 된다. 단적인 사례이지만 이것이 말하는 것은 많다. '명함이 바뀌었으니 과거와 같은 대우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사실 장소를 예로 들었지만 실제로 만났을 때의 느낌은 이전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낀다.


선배 왈, "기자 때 지인 비즈니스에 전혀 도움 안돼"


또 다른 선배 사례를 꼽겠다. 기자 출신 모 지인은 은퇴 후 친했던 기업들을 대상으로 소모성 자재 공급 사업을 했다. 예를 들어 모니터, 노트북, 사무용품 등의 구매를 대행한 것이다. 반년 정도 지난 후 선배 회사를 찾아갔다. 선배는 “기자로 만났던 사람들은 사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광고국에 있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로는 갑을관계지만 광고국에 있을 때는 수평관계였고 그래서 더 끈끈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기자로 기업 임원이든 홍보담당자를 만나면 그들은 상대방에게 예우를 해주고 앞으로 계속 관계가 지속될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출입기자이니 어쩔 수 없이 행동한 셈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필자도 홍보담당자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필자가 홍보팀장으로 재직 시절 친한 후배가 무리한 취재를 하기에 ‘사실이 아니다’며 강하게 항의를 했는데 전혀 필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기사가 나왔다. 그 과정에서 필자가 목소리를 높였더니 그 후배 기자는 후속으로 비판기사를 찾아다녀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필자가 다니던 회사 임원에게 ‘홍보팀장이 제대로 관리를 못한다’고 얘기를 해서 필자가 불려 갔던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홍보담당자 입장에서는 기자에게 조심할 수밖에 없고 혹시 나를 우려해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하게 된다. 어쨌든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이는 끈끈한 관계로 이어지기가 매우 힘든 게 현실이다.


선을 유지해야 하는 기자와 홍보


또 하나의 사례를 들겠다. 모 기관 A 홍보팀장은 기자들과 관계가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기자들과 여행도 함께 다닐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다. 자연스럽게 속내도 얘기하는 관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 A팀장은 큰 실언을 했다. 술자리에서 기분이 좋아, 회사 신축건물 사옥 지하 매점을 와이프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꽤 높은 고층빌딩인데 매점은 지하에 딱 하나뿐인 곳이다. 당연히 여기는 돈을 쓸어 담는 곳이었다. 누가 봐도 제대로 절차를 밟지 않고 '내부 낙점'을 받은 것이다. 얼마 후 A팀장은 협찬 이슈로 기자와 문제가 생겼다. 친했던 모 매체 기자의 무리한 요구를 받게 됐는데 집행이 힘들다고 선을 긋자, 기자는 홍보팀장의 건물 지하 매점 이슈를 기사화한 것이다. '도덕적 해이' 비판이 일었고, 결국 A 홍보팀장은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홍보맨의 고충이며 딜레마다. 기자와 친해야 한다. 하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일상생활에서 ‘선’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 기준을 찾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다. 결국 이 때문에 기자와 홍보인들은 관계가 좋아 보이지만 서로 간의 그 끈이 끊어지는 순간 완전히 남, 심하면 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명함이 바뀌면 조문객 수가 다르다


또 하나의 사례로 현 언론사 편집국장과 전직 언론사 편집국장이 가족상을 당했을 때 조문객 수를 비교하면 놀라울 수준이다. 다른 직종도 비슷하겠지만 언론사는 특히 심하다. 현직에 있을 때는 그 어느 유명인 못지않게 조문객이 많다. 조의금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기자들이 취재원들에게 조문을 반 강제로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직이라면 얘기가 100% 달라진다. 기자도 취재원에게 조문을 요청할 명목이 없다. 조문객의 수는 비교도 안된다.


사내 직원 챙겨야 하는 홍보맨


홍보로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사내에서 '을'이 된다. 아무래도 내외부 민원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취재 요청이 들어오면 실무부서에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반대로 기사 아이템을 찾는 과정에서 실무부서에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기자에게 요청하는 만큼 내부에도 요청할 일은 허다하다.


하지만 이런 낮은 자세가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된다. 소위 고충을 이해해주는 사람과는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게 된다. 세상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무래도 취재기자 위치에 있다 보면 마감이라는 압박 때문에 주변을 살피기가 어렵다. 기업(홍보팀) 사정을 들어주며 취재를 하려면 기자는 제대로 마감을 하기 힘들다. 자연스럽게 ‘갑질’ 아닌 ‘갑질’을 한다. 목소리도 올라간다. 예컨대 “3시까지는 무조건 마감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저 박살 납니다”라며 간접적으로 취재원에게 갑질을 한다.


정리


기자는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취재원들은 기자 개인을 보고 만나는 것이 아니다. 매체를 보고 만나는 것이다. 그런 취재원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기자를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회사를 홍보하거나 또는 회사 언론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처다. 이 목적이 없어지면 대부분 관계가 흐지부지된다. 더 이상 관계를 가져가야 할 목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홍보인들은 주변 사람들과 고충을 나눈다. 언론 이슈에 대응하는 과정 등에서 서로 어려움을 느끼고 공감하고 챙겨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필자 주변에는 유독 미혼자가 많았다. 이 또한 ‘직업 특성과 관계가 있지 않은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기자로 활동하게 되면 고위급을 주로 만나게 되고 또 홍보인들은 기자에게 각별한 대우를 해준다. 거기에 익숙해지면서 일반 샐러리맨 파트너와 편안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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