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습니다. 집도 없었고, 차도 없었습니다. 한 달에 4만원쯤 하는 급식비도 제 때 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자식놈들이 기가 죽을세라, 부모님은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가능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려고 애 쓰셨습니다. 가난은 잠깐이지만 경험은 평생을 간다면서요.
여윳돈이 없던 부모님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은 오직 먹는 경험 뿐이었습니다. 한강뷰 초고층 아파트에서 지내는 경험, 운전대가 오른쪽에 달려있는 외제차로 바캉스를 떠나는 경험, 퍼스트 클래스로 유럽일주를 돌고오는 경험은 너무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먹는 경험은 꽤 시켜줄만 했지요. 탑골공원 옆 유진식당 평양냉면이 3천원, 광장시장 순희네빈대떡 녹두부침개가 4천원, 독립문 대성집 도가니탕이 5천원이었습니다. 부모님은 당신의 자식들 앞에서 누군가가 맛집 이야기를 할 때 "나도 거기 가봤어"라고 어깨 펴고 얘기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음식은 인생입니다. 때때로 "어,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인데"를 말하면서도 머리로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는 까닭은, 혀 끝에 새겨진 추억이 머리에 기록된 기억보다 더 짙게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두 분 덕에, 지나온 저의 인생은 꽤나 다채로웠습니다. 덕분에 꽤 많은 맛집을 다녔고, 꽤 많은 음식을 맛봤습니다. 그리고 추억들이 켜켜이 쌓였습니다. 다녀본 맛집의 수 만큼. 먹어본 음식의 수 만큼.
이제 그 추억들을 잔잔히 풀어놓고자 합니다. 때론 맛집에서의 에피소드일 것이고, 때론 음식에 얽힌 스토리일 것입니다. 어쨌든,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추억 이야기입니다. 전문적인 리뷰도 칼럼도 아닙니다. 먹는 수필입니다. 먹수필입니다.
담백하겠습니다. 자극적인 맛은 좀 덜 하더라도, 글재료 본연의 맛이 느껴질 수 있도록 조미료는 살짝만 치겠습니다. 푸드포르노는 지양하겠습니다. 한 분의 독자님이라도 제 글을 읽고 나서 은근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람됩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시간입니다.
추억 한 그릇씩 정기배달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