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감자전
수염이 듬성이는 턱 끝에
어차피 버티지 못 하고 떨어질 눈물이
자꾸 맺혔다.
마흔이 다 되어가는 아저씨의 울음소리는
그다지 듣기 좋지 않았다.
각설하면, 내가 무능력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모든 건 내 탓이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탓을 할지언정, 우리는 모두 피해자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영영 그러지는 못 했다. 버틸 수 있는 건, 딱 열흘 정도였다.
밤과 새벽, 토요일과 공휴일, 집과 사무실, 외부와 내부. 시달림은 사방팔방 계속되었고,
그게 하루, 이틀, 닷새, 열흘. 그쯤되니 이 악물고 꽉 쥔 양손의 가드가 내려가고 말더라.
내 탓이 아니었던 것들은
사실 내 탓이 되었다.
나 때문 아니다, 기 죽지 말자, 신경쓰지 말자,
스스로를 얼마나 다독였는데,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거듭되는 사방의 힐난에 스멀스멀 좀 먹혔다.
같은 편의 손가락질.
무너졌다.
마음도 몸도.
잘 세워진 도미노. 앞단 하나를 톡 치니 와르르 쏟아졌다. 무력감. 자괴감. 걷잡을 수 없었다.
미안해하지 못 하던 피해자는 온갖 곳에 사과했다. 마침표를 찍듯 수없이 '죄송합니다'를 내뱉었다.
남들의 눈홀김을 타고서
나는 작았다.
보잘 것 없었다.
별 볼 일 없었다.
손이 떨렸다.
심장이 요동쳤다.
밥이 먹히지 않았다.
팔다리가 말라갔다.
애써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5kg 훌쩍 넘게 빠졌다.
문득, 회사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며 목을 매달은 어느 회사의 모 간부가 떠올랐다.
아내가 생각난 건 썩 다행한 일이었지만, 또한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이 역시 미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겐 평소에도 미안해왔다. 나와 함께 하기엔 너무나도 선한 사람이라. 나라는 그릇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이 넘치도록 맑은 사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
이참에 미안함이 더해졌다.
난 고작 이만한 사람인데.
이제 원래보다도 더 형편 없어진 사람인데.
아내와 감정을 나눌 여력마저 사라졌는데.
이런 내가 아내의 좋아함을 받아도 되나.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을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안하고
미안했다.
먹먹히 옅은 쥐색에 군데군데 갈빛으로 부쳐진 자국. 직접 갈아 우둘투둘해보이는 질감. 감자전이었다.
능숙히 만들어진 모습은 아니었다. 전이라기엔 떡 같은 두께에 영 서툴게 익힌 모습. 엉성해서 웃음이 나왔다. 얼마만에 나온 웃음인지.
저래 보여도 직접 갈아내면서 몇 시간은 고생했을 게 분명했다.
머리 위엔 데스크를 비추는
흐릿한 조명 한 줄.
끊어지듯 이어지는 키보드의 타격음은
경쾌하지 않았다.
사무실은 적이 고요했고
대체로 어두웠다.
떡진 감자전의 온기는
핸드폰 액정 너머로 전해지지 않았고
창 밖 풍경은
새까맣게 처량했다.
홀로 있는 사무실에서
나는 울었고
창피하게도 잔뜩 소리를 내며 울었고
벌거진 눈두덩이를
아내에게 들키지 않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 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하여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