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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Jan 13. 2021

천 원짜리 김치전만 먹던 진상손님

김치전 : 명륜동 서우네김밥

1.

백해무익은 없다. 무해백익도 없다. 세상은 입체적이다. 만물에는 양면이 있다.


그러나 가난은 압도적으로 나쁘다. 경험적으로 그렇다.


2.

가난은 사람을 날카롭게 한다.


어떤 단어가 어울릴지 모르겠다. 반항심과 반발심 사이 어드메쯤. 세상을 적으로 돌리거나, 척을 지거나, 세상에 반(反)하거나. 그 어드메쯤.


그 정도 상태로 만든다.

가난은, 사람을.


3.

예를 들면, 백화점. 우리의 백화점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쇼핑하는 곳이 아니었다. 구경가는 곳이었다.


물론 예쁜 물건은 참 많았다. 귀해 보이는 물건,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건이 참 많았다. 갖고 싶었다.


하지만 살 수는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티 쪼가리가 삼천원이라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티셔츠는 그 열 배쯤 했다. 아니, 백 배가 넘는 것도 흔했다.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지출할만한 강단은, 우리에게 없었다.


예뻐 보이는, 귀해 보이는, 고급져 보이는 물건이 참 많았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사람이 많았다. 쫙 빼입고, 그만한 가격의 물건들을 서슴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손에는 백화점 심볼이 그려진 종이 쇼핑백이 주렁주렁 들려있었다. 분명 무거워지는 건 그들 손이어야 할진대, 그걸 바라보는 내 기분이 창피하게 무거워졌다.


4.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미웠다.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 했다는 경험의 결핍. 그들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 그로부터 그릇된 분노가 비롯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눈매는 점차 독해져갔다.


생각했다. 저들이 누리는 쇼핑의 즐거움은, 우리 같은 이들의 고통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저들은 이러한 마땅한 사실을 알까 싶었다. 모를 것 같았다.


사회가 미웠다.

모두가 싫었다.


세상은 오직 각자의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몰랐다.


서로에 대한 서로의 배려, 그 든든한 따뜻함을 몰랐다.


5.

대학교 후문 골목. 번화가는 아니다. 핫플도 없고, 문화공간도 없다. 직장인들이 굳이 찾아올 곳은 아니다.


그곳은 학생들의 공간이었다.


맛은 좀 덜 하지만, 분위기도 후졌지만,

양이 많은 곳. 값이 싼 곳.


그런 곳들이 많았다. 소비력이 높은 직장인들이 아닌, 용돈이나 아르바이트삯으로 생활하는 학생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서우네김밥은 그곳에 있었다.


6.

문. 딱 키 정도 되어보이는 높이. 어깨부터 손목까지 정도 될만한 너비. 격자모양의 나무틀이 짜여있고, 그 사이사이를 한 뼘 크기의 유리가 메운다. 유리에는 뻘겋고 퍼런 비닐 테이프로 가게 이름을 적어 놓았다.


문 옆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하나 있다. 반투명한 시트지를 붙여 놓았기 때문에 시야가 통하지는 않는다. 가게문에 상호를 적어놓은 그 테이프로 몇 가지 메뉴를 적어놓았을 뿐이다.


김밥. 라면. 떡볶이.


군데군데 덧대진 코팅종이로 메뉴를 더 알리고.

팥죽. 청국장. 순대 안에 있슴.


7.

문을 열고 들어서면 냄새부터 묘하다. 끈적하면서도 습한 위에, 가장 최근에 한 메뉴의 냄새가 쌓여있다. 마냥 기분 좋은 향은 아니다.


끈적이는 건 냄새만이 아니다. 돌바닥, 나무식탁, 쇠컵. 재질을 막론하고, 그곳에 있는 모든 것에는 특유의 끈적임이 묻어있었다.


천장에 닿을 것처럼 높은 곳에 얹어져있는 작은 브라운관 TV는 늘상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다. 시선을 내리면 왼쪽 아래에 테이블이 하나, 오른쪽 아래로는 테이블이 셋. 조촐하게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왼쪽 테이블은 위치가 애매하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기둥 바로 밑이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는 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마침 오른쪽 테이블이 다 찼을 때 이 곳을 찾았다면, 운 나쁘게 고개도 제대로 못 펴고 먹는 거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싫지 않았다. 되려 편안했다.


불편한 것은 오히려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의 아늑함이 편치 않았다. 우아하고 포근한 곳일수록 위화감이 들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학교 후문 분식집은 아늑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늑했다.


8.

한 쪽 벽면에는 메뉴판이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빼곡했다. 얼핏 봐도 수 십 가지는 넘어보였다.


빽빽한 메뉴판의 오른쪽 귀퉁이. 가장 즐겨먹었던 메뉴가 적혀있었다.


김치전.

1,000원.


9.

꽤 넉넉했다. 손가락 두 세 마디 크기의 한 입 김치전이 아니었다. 지름만 한 뼘이 넘었다.


재료가 그렇게 부실하지도 않았다. 김치 건더기는 물론, 새우도 있고, 오징어도 있다. 가끔은 바지락살도 있다. 나름대로 해물김치전이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것도 아니다. 김치전 주문이 들어오면, 주인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김치전 반죽을 만드신다. 금방이다. 즉석에서 뜨끈하게 부쳐내신다.


다 부쳐진 해물김치전은 널따란 멜라닌 접시에 담겨나온다.


따뜻하다.


종지 그릇에 간장도 딸려나온다. 단무지는 셀프다.


10.

신기했다. 이게 천 원이라니. 양도 질도 이렇게 괜찮은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전은 저렴한 메뉴가 아니었다. 어지간한 술집에서는 넙데데한 파전 하나가 만 원 중반대쯤 했다.


11.

이게 어떻게 이 가격일까.


생각했다.


천 원짜리 김치전을 파는 곳도, 장사를 하는 가게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 손해를 볼 리는 없다. 아니, 이 정도 김치전을 천 원에 파는데도 남겨먹을 정도면, 대체 다른 술집들은 얼마나 폭리를 취하고 있는 건가. 술집이라도 굴릴 자본력이 있어야 폭리도 취하는구나.


싸고 맛 좋은 김치전을 먹으면서도,

세상을 미워했다.


12.

어쨌든 꽤 자주 찾았다. 찾아가서, 노상 김치전만 먹었다. 열에 아홉은 김치전만 먹었다.


같은 과 동기와 함께 찾기도 했다. 역시 수업을 째는 게 대학생의 낭만 아니겠느냐며, 굳이 강의에 무단으로 빠지고 김치전을 먹었다.


단골이 되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서로 얼굴을 알아볼만큼. 어느덧.


13.

주인 아주머니 얼굴을 뵙는 것은 떳떳하고 당당한 일이었다. 나는 이 곳의 단골손님이었으니까. 내가 이 집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고 있으니까.


슬쩍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서우가 누구냐. 딸이란다. 잘 크냐. 벌써 대학도 졸업했단다. 아이쿠. 그만큼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집이었던 거다.


어느 날은 다른 걸 또 물었다. 술 안 파시냐. 안 파신단다. 왜 안 파시냐, 술 먹고 싶을 때가 많다, 김치전에 술이 딱이다, 술을 갖다 놓으면 잘 팔릴 거다. 됐단다. 딱히 그렇게 돈 벌 생각은 없으시단다. 정 술이 먹고 싶으면 요 앞 마트에서 사와 마시란다. 그러고보니 언젠가, 이 곳에서 라면 하나를 시켜놓고 검은 봉다리에 소주를 가져와 드시던 어르신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14.

작별은 급작스러웠다. 골목을 지나가다 문득 보았다, 문을 닫은 걸. 그 집 뿐이 아니었다. 그 일대 몇 집은 다 문을 닫았다. 노후화지구 재개발이라나.


예고 없이, 

대학생 시절 추억이 서린 분식집 하나가 멀리 사라졌다.


15.

후회는 언제나 늦다.


천 원짜리 김치전을 다시 생각한 건, 그 집을 다시 찾아갈 수 없을 때였다. 이미 건물이 헐려버린 뒤였다.


세상 물정을 알게 된 이후였다.


16.

돌아보니, 잘못 생각했었다.

천 원짜리 김치전으로 이윤을 남겨먹을 수는 없었다.

침착히 따져봤더라면, 진즉 알 수 있었을 터다.


김치가 좀 비싼 재료던가. 거기에 오징어, 새우, 바지락. 하다못해 밀가루, 식용유, 간장, 단무지. 식재료 값으로도 이미 천원을 넘을 거다. 게다가 김치전은 식재료만으로 부쳐지지 않는다. 임대비, 인건비, 수도비, 가스비, 뭔 비, 뭔 비.


회계적으로도, 원가가 판매가를 상회한다.

김치전은 팔수록 손해 나는 메뉴였다.


17.

손해 나는 일이 장사가 아니라면,

김치전은 장사가 아니었다.

같이 살이었고, 봉사였다.


김치전에 있어, 주인 아주머니는 장사치가 아니었다.

이웃이었다.

봉사자였다.


문득, 술을 마시고 싶거든 요 앞에서 사와 먹으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18.

나에게 단골손님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떳떳하고 당당하게 여겼다. 안타깝게도 떳떳했고, 아쉽게도 당당했다.


고깝다. 단골인 양 행세했다.

생각이 짧았다.


김치전만 먹는 놈. 체리피커. 진상. 그 집 살림살이에 보탬을 준 것은 없었다. 도움을 받은 것은 나였다. 천 원짜리 김치전만 먹으면서, 스스로를 마치 대단한 단골처럼 여겼다.


19.

협찬. 대학교 동아리 문화였다. 동아리에서 무슨 행사를 한다치면, 후문 골목의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며 후원을 받았다. 예를 들어, 밴드 동아리의 공연. 공연을 안내하는 브로셔에 음식점을 홍보해준다는 명목이다. 그러면 적지 않은 음식점에서 돈을 주신다. 5천원 한 장 주시는 곳도 있고, 10만원도 넘게 주시는 곳도 있다.


그 때는 그게 가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가게 입장에서는, 홍보비고 마케팅비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게 무슨 그렇게 도움이 될 수 있었을까. 어차피 후문 골목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죄다 학생들이었고, 그 학생들은 이미 후문 골목에 있는 가게들을 빠삭하게 다 꿰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동아리 행사 브로셔에 가게 이름 몇 자 적어넣는다고 해서, 인지도가 올라가는 게 아니었던 거다. 가게 매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짓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문 골목 가게들이 기꺼이 돈을 냈었던 건, 상생이었다. 같이 살아가는 거였다. 그 공간을 유일하게 소비하는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고, 자식뻘 되는 학생들에게 주는 용돈이었다. 협찬을 구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빈 손으로 돌려보내기 마음이 불편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이었던 거다. 돈 몇 푼, 쥐어보내셨던 거다.


천 원짜리 김치전. 그게 따뜻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이웃끼리의 지지대였고, 디딤이었다. 


20.

아무 카페에 들어가 벌컥 화장실을 쓰는 짓, 주문하지 않고 패스트푸드점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짓, 천 원짜리 김치전만 먹는 짓. 이게 나쁜 줄을 몰랐다. 그 누가 되었든, 이득이 되니까 운영하는 가게라고 생각했다. 모두 가게주인이 계산한 비용 범위에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급하니까 일단 화장실을 쓰지만, 나중에 이 집에서 커피 한 잔 사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 돈에 이런 비용들이 다 포함된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이들이 나눠내고 있는 값인지도 모른 채, 오직 날만 서있었다. 날카롭기만 했다.


다행스럽게,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서로의 배려. 그것으로 지탱되고 있는 이 사회. 미처 몰랐던 그 든든함.


심지어 백화점 마저 그러했다. 누군가에 의해 백화점이 굴러가고 있기에, 돈 들이지 않고 귀한 구경을 할 수 있던 거였다. 오히려 혜택을 보던 건 나였다.


밉게만 보던 백화점에서도

김치전이 부쳐지고 있었던 거다.


21.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매섭게 치켜뜨고 있는 두 눈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감겨줄 거다.


그리고는 꼬옥 안아줄 거다.

괜찮다고.

충분히 챙김 받고 있다고.


22.

늦었다.

늦었지만 서우네김밥 아주머니께

이제라도 전하고 싶다.


감사했노라고.

덕분에 맛있는 대학생활을 했노라고.


그리고 죄송했노라고.

챙김 받고 있었음을 몰라서,

챙김 받고 있었음에도 날이 바짝 서 있어서.

그래서 죄송했노라고.


23.

이제 되뇌인다.

좀 넉넉히, 이자도 쳐서,

그동안 받은 배려를 누군가에게 뱉어내자고.


천 원짜리 김치전을 부쳐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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