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장밥 May 05. 2021

고구마순은 보랗습니다

고구마순 지짐

언뜻. 생긴 게 마늘쫑 같다. 원통형 줄기. 가운데 길게 홈이 나있다. 그런데 아니다. 좀 들여다보고 있으니 다른 게 보인다. 일단 마늘쫑 보다는 훨씬 길다. 굵기도 살짝 더 가는 것 같다. 결정적으로, 억세지 않아 보인다. 마늘쫑은 마치 대쪽처럼 곧게 뻗은 채 단단한 속을 유지하는 듯한데, 이건 그렇지 않다.


그러고보니 마늘쫑 보다는 토란대를 훨씬 더 닮았다. 조리법도 비슷해 보이고, 용도도 비슷해보인다. 된장을 넣어서 지져먹기도 하고, 나물로 무쳐먹기도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맛을 보면, 토란대랑도 또 다르다. 토란대는 흐물거리는 속에서 말캉하게 씹히는 게 있는데, 이건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안 무르다. 싸리 빗자루 같은, 얇지만 기다란 세로줄이 느껴진다. 식이섬유인지 섬유질인지 그럴 거다.


고구마순 얘기다.



처음 본 고구마순은 황토색이었다.


집밥이 으레 그렇듯, 고구마순도 그런 집반찬이었다. 한입에 눈을 확 뜨게할만한, 그런 자극적이고 별다른 맛은 없었다.


요즘이야 사먹고 시켜먹는 게 디폴트값이 되어버린 집들이 많지만, 어디 예전에도 그랬던가. 어미 젖을 떼고 젖이 아닌 음식물을 처음 씹어 넘길 때부터 결혼해서 독립하기 전까지, 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반평생을 그 집안의 음식을 먹고 살았다.


그러니까 고구마순에서 우리 집 맛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엊그제 먹은 된장찌개에 넣었던 된장으로 지진 반찬이었으니까. 익숙하지만 입에 착 들어맞는 맛. 우리집 맛이고, 우리집 냄새였다.


쌀뜨물 같이 희연 김이 올라오는 갓 지은 밥에, 고구마순을 몇 줄기 얹어 먹는다. 간간한 된장맛은 밥알 사이사이를 채우고, 고구마순의 식감은 부드러이 아스러지는 밥과 대조적으로 어우러진다. 감칠맛이 한껏 돋아, 결국 못 참고 가져온 참기름. 오목넙적한 대접에 밥과 고구마순을 넣고 참기름을 반숟갈 둘러비빈다. 노상 먹던 그 맛인데, 어떻게 이다지도 맛있을까.


된장에 지져진 고구마순은

된장빛 대로 황토빛이이었다.



다음은 연두색이었다.


한 번 고구마순의 맛을 본 아들녀석은 몇 번인가 제 어미를 졸랐더랬다. 고구마순을 먹고 싶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어미는 순순히 고구마순을 해주었다. 길어봤자 며칠 안짝.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아들놈은 제가 먹고 싶은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집 부엌은 집 안 거실 한 켠에 마련되어 있던 게 아니라, 냉난방이 되지 않는 발코니 같은 곳에 따로 떨어져있었다. 오직 조그만 철문을 통해서만 부엌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아들놈이 본 어머니의 모습은 고구마순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검은 봉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 뿐이었다.


집 근처 시장에 가서 고구마순을 사오셔서, 검은 봉다리를 들고계신 채로 그대로 부엌에 들어가시면, 얼마만큼의 시간 뒤에 부산한 소리와 함께 구수한 된장지짐 냄새가 난다. 먹고 싶다던 반찬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져 그릇에 담겨나오는 고구마순은 여지 없이 황토색이었다.


연두빛 고구마순을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날도 어머니는 고구마순 반찬을 준비중이셨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아들놈은 그 날따라 어머니께 안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엌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밥을 준비하시는 어머니께 다가가 괜히 안았다. 머리가 어머니 어깨쯤 왔던 터라, 어머니를 향해 뻗은 팔은 어머니의 볼룩한 윗배를 감았다.


팔은 윗배를 감고, 머리는 옆으로 돌려 가슴팍에 기대니, 시선은 도마 위로 가 앉았다. 오래되어 몇 줄이 깊게 갈라진 나무 도마 위. 처음 보는 먹을거리가 한 웅큼 쌓여있었다.


"엄마, 저게 뭐에요?"


"아이고, 그렇게 먹고도 몰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구나. 저게 고구마순이야."


도마는 낡았으되, 고구마순은 뽀얬다. 어찌나 뽀얀지, 당당하게 빛났다. 봄 같이 싱그러웠고, 산뜻했다. 잘 익은 멜론이 떠올랐다. 햇빛같은 연두빛이었다.



마지막은 보라색이었다.


어머니를 안은 채, 고구마순의 연두빛을 처음 맞이하고 적잖이 놀랐다. 저렇게 연두찬란한 속살을 감추고 있을줄은 몰랐다. 어머니 손에 담긴 검은 봉다리 위로 뺴꼼히 튀어나와있던 고구마순은 분명 뽀얗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히 먹었던 것의 낯선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익숙한 존재의 낯선 모습이 또 하나 있었다. 어머니의 손가락이었다.


고구마순 맛을 알기도 훨씬 전, 손끝에 봉숭아 물을 들인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봉숭아물을 들여주시며, 첫 눈이 올 때까지 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속삭여주셨지만, 그 때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때라 어머니의 속삭임이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속설과는 별개로, 봉숭아물이 든 손톱은 그 자체로 예뻤다. 코랄빛. 발그스름한 봉숭아 빛깔은 마치 과일가게에 쌓여있는 천도복숭아 같았다.


어머니의 손가락은 봉숭아물을 떠올리게 했다. 손끝이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쁜 오렌지빛이 아니라 거무튀튀한 보라색이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손가락 끝은 보랬다. 손톱 밑에도 때 같은 덩어리가 듬성히 껴있었다. 예쁘지 않았다. 보라빛이 살짝 도는 고동색. 탄광의 광부들 손 끝이 이럴까.


원인은 고구마순이었다. 지금은 대형마트니 뭐니 뽀얀 속살을 자랑하는 고구마순을 쉽게도 구할 수 있다지만, 그 때는 논밭에서 수확한 녀석들을 시장에서 쌓아두고 팔던 때였다. 당연히 손질은 어머니 몫이었다. 설령 시장 할매가 고구마순을 손질해 팔았더라도, 어머니는 당신이 직접 손질하는 쪽을 택하셨을 거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됐던 때였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고구마순 하나하나, 당신의 손톱으로 긁어가며 겉껍질을 벗겨내셨고, 죽은 고구마순은 그 흔적을 어머니 손끝에 새긴 것이었다. 보라빛으로.


멍청한 아들놈은 전혀 몰랐다. 맛있다며 입으로 여넣기만 바빴지, 그게 어떻게 밥상에 차려졌는지를 전혀 몰랐다. 식욕에 따라 어머니께 내뱉은 고구마순 먹고 싶다는 말이, 어머니를 고되게 하고, 어머니의 손끝을 보라빛으로 물들일 거라고는 한 푼어치도 생각지 못했었다.


싱크대 옆 구겨진 비닐 속. 칙칙한 허물들이 보였다. 얼룩덜룩한 겉껍질들. 고구마순이 입고 있던 외투였다.


"너희 먹이는 게 이렇게 어렵다~"


어머니가 하얗게 웃으셨다.

손 끝은 보랗게 물드신 채로.



어버이 눈에 자식은 영영 애라지만, 자식들도 시나브로 자란다. 뒤집기도 못 하던 녀석이, 네 발로 기고, 두 발로 걷고.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고구마순도 그렇다. 고구마순을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말하던 애가, 보라빛 비밀을 알고 나서는 고구마순 해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이 뱉은 말에 어머니가 힘드실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시나브로 자라나도, 어버이 눈에는 역시 어린 애다. 그래서일거다. 어린이날이면 아직도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는 까닭이. 이제 마흔이 머지 않았는데.


오늘도 용돈을 받았다.

십만 원.

어린이날이라서.


다 큰 자식 눈에 비친

어머니 얼굴이

왠지 보랗다.

이전 15화 동태전에는 할머니가 있고 엄마가 있고 내가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