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장밥 Feb 10. 2021

동태전에는 할머니가 있고 엄마가 있고 내가 있다

동태전

올록볼록한 게르마늄 돌이 박힌 전기장판. 노파는 궁둥이를 지지고 앉아 있다. 두 다리는 누런 장판바닥 위에 올려두고는, 두 손을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동태포. 동태포를 뜨고 있다, 바닥에 앉아서. 뜨끈한 바닥에 동태를 얹으면, 동태가 녹으니까, 상하니까, 양 다리까지 전기장판 위에 앉지 못 한 거다.


동태를 포 뜨는 솜씨가 자못 능숙하다. 수 십 년을 생선장사를 한 몸이니 그럴 수 밖에. 부어오른 팔뚝에, 못생긴 손 끝에, 동작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을 칼질이다. 유별난 아들놈 입맛에 맞게, 동태포를 얇게도 썰어낸다.


야야, 이것 좀 가져가라. 노파의 목소리는 방문을 넘어 부엌에 이른다. 시어미의 목소리를 들은 며느리는 제까닥 안방 문을 연다. 이야. 어머니, 고생하셨어요. 역시 동태포는 어머니가 뜨셔야 한다니까. 며느리의 칭찬에 시어미는 기분이 좋다. 웃기도 멋쩍어 아무런 반응은 않지만.


시어미가 썰어낸 포는 이제 며느리 손으로 건너갔다. 며느리 차례다. 혹시 가시가 제대로 발라지지 않았는지 대강 훑는다. 노파는 동태 포뜨기 선수였지만 나이가 먹어가며 실수가 늘었기 때문에 며느리의 검수는 필수다.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면, 며느리는 동태포에 밑간을 한다. 얇게 잘린 동태를 하나씩 들어내어 가는 소금과 후추를 뿌린다. 소금이 뭉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소금이 뭉치면 말 그대로 뭉텅 짜다.


명절 하루 전날 오후. 손주놈이 등장한다. 마룻바닥에 신문지를 몇 장 넓데데하게 깔고서는 주섬주섬 세팅을 시작한다. 사기로 된 커다란 오목 대접 두 개. 하나에는 밀가루를 붓고, 다른 하나에는 날계란을 깨넣는다. 갯수는 대충 열 개 남짓. 총총하게 썬 대파와 소금, 후추를 더하여 휘젓는다. 잘게 썰린 대파는 대접 안에서 몸을 부비며 노른자와 흰자가 잘 섞이도록 돕는다. 오목 대접 옆에는 전기 후라이팬을 갖다 놓는다. 두 뼘은 족히 넘어보이는 앉은뱅이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달군다. 기다란 튀김용 나무젓가락을 마지막으로 준비는 끝이다.


얇은 동태살을 하나씩 젓가락으로 집어내어 밀가루와 계란을 차례로 입히고 전기 후라이팬에 줄 세워 얹는다. 너무 노랗기만 하면 밋밋하니까, 푸릇한 파를 두어개씩 얹어 모양을 낸다. 손이 쉴 새가 없다. 후라이팬 앞에서 한참을 노동하고 있노라니, 기름 냄새에 머리가 지끈한다. 그렇다고 불을 세게 할 순 없다.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으니까. 전 부치기는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전 부치기는 의외로 고되다.



손주놈은 무뚝뚝하다. 할머니에게 하나 뿐인 친손자, 어미에게 하나 뿐인 아들인데도 그렇다. 애교는 커녕 대화조차 잘 잇지 않는 놈이다. 그러나 전 부칠 때 만큼은 다르다. 손이 바쁘니 눈은 핸드폰에서 해방된다. 기름 냄새가 밸까봐, 기름이 튈까봐, 가까이에 뭘 틀어놓고 볼 수도 없다. 오로지 가능한 건 대화다. 그래서 손자는 제 할미와 어미와 이야기를 나눈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전 부치는 손주놈을 보고 있다. 그러다 불쑥 혼잣말을 한다. 인쟈 다 컸다. 그러면 손주놈은 툭 대답을 한다. 아니 그럼요 할머니, 제 나이가 몇인데요. 둘의 대화는 부엌에 있는 며느리에까지 가 들린다. 니가 백 살을 먹어도 할머니한테는 애야. 불쑥 껴들어 말을 섞는다.


한번 섞인 말은 좀처럼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작년 얘기, 십 년 전 얘기, 할머니 어렸을 적 얘기. 서울 얘기, 부산 얘기, 김제 얘기. 시간도 공간도 자유롭다. 말은 계속 이어진다. 되려 확장된다.


동태전 덕분에 할머니와 며느리와 손자가 대화를 한다.

어느 집의 명절 모습이다.


할머니가 포를 뜨고, 며느리가 간을 하고, 손자가 부친다.

어느 집의 동태전이다.


그러나 머지 않은 미래, 대부분의 집에서는 명절 차례상을 볼 수 없을 거다.



우리의 명절. 그리고 차례와 제사. 악습이라고 한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차례가 사라져가고 있다. 제사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어느 집에서, 명절은 악습이 아니다. 나쁜 풍습이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 점처럼 머물러 있던 가족들. 평소에 데면데면 했던 가족들. 그들을 이어준 게 명절이다.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다시 선과 선이 모여 면이 되면, 그제서야 탄생했던 음식이 동태전이다.


나쁜 건 그쳐야 한다. 하지만 모든 전통이 나쁜 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살았던 이들이 행해왔던 문화라면, 어떠한 이유가 있었을 터다. 각자에게 이유 있는 문화를 향유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옛 것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거부감을 갖거나 어색해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우리가 청첩장 모임과 같은 새로운 결혼 문화를 만들었듯이, 그 때의 그들은 명절이라는 전통을 만들었을 뿐이다.


물론 시간이 흘러가며, 세대가 바뀌어가며, 마땅했던 이유가 마땅하지 않아지기도 할 거다. 지금의 우리에겐 악습이 되어버린 전통도 분명 있을 거다. 그렇지만 박스 안에 들어있던 아이폰 하나가 불량이라고 해서, 그 박스 안에 들어있는 모든 아이폰이 불량인 것은 아니다. 일부가 나쁘다면 나쁜 걸 도려내면 될 것이지, 박스 모두를 버리는 게 맞는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다. 우리에게 차례와 제사가 백해무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소한 어느 집에서, 명절은 악습이 아니었다.

애교 없는 다 큰 손자가 할머니와 말 붙일 핑계 거리가 되는 것. 그게 명절이었다.


다가오는 설에도 변함없이 동태전 부치기를 바란다.


차례상이 사라지는 시대.

할머니와 어머니와 전을 만들던 머슴아가

이번 설을 그리며 글을 쓴다.

이전 14화 천 원짜리 김치전만 먹던 진상손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