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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장밥 Feb 24. 2021

외손주의 이름도 모른 채, 외할머니는 동치미를 담갔다

동치미

어렸을 적, 외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애초에 몇 번 가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어른들 문제였으니까, 그저 돈이 얽힌 문제겠거니 짐작하고 말았다.



외가는 식구가 많았다.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명절이면 외할머니 댁은 북적였다. 이모도 많고 이종사촌도 많았지만 유독 눈에 띈 건 이모부들이었다. 이모들은 남편과 함께, 이종사촌들은 아빠와 함께 외할머니를 찾았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결코 외가에 발을 들이지 않으셨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외가 가는 게 꺼려졌다. 명절이 되어도, 외할아버지 제사날이 되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외가를 가지 않으려 했다. 나도 그랬고 동생도 그랬다.


어머니는 속상해하셨다. 그럴 법 하다. 남편과 함께 못 가는 것도 여간 눈치 보인 게 아니었을 텐데, 이젠 자식놈들까지 가기 싫어하는 기색을 내비치니까. 모두가 외가를 가지 않아 혼자서 친정을 찾으셨던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안 좋으셨을까. 자매들과 함께 밥상을 차리며, 부러 무심한듯 '애들은 시험이 있다고 못 오겠다네'라며 조악한 변명을 혼잣말처럼 읊조리셨을 게 분명하다.



결국 우리에게 외가에 가는 건 벌청소와 같게 되었다. 순번을 정하듯 동생과 번갈아가며 외가를 가게 되었다. 지난 번엔 오빠가 갔으니까, 이번엔 네가 가라는 둥. 희안한 풍경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우리는 더 큰 반김을 받았다. 가끔 갔으니까 희소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친함은 없었다. 가끔 갔으니까 정이 두텁게 쌓이지 못했던 거다. 남들이 받는 것보다 조금 더 과장된 반김. 하지만 친하지 않았던 탓에 그 뒤를 잇는 건 어색한 정적. 외가집 안에서 우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먼지였다.



외할머니는 경상도 분이셨다. 말투에는 경상도 억양이 담뿍 묻어있었다.


"승제야~ 으서 온나~"


억양 탓인지 외할머니는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 하셨다. 내 이름은 승제가 아닌데, 선잰데, 외할머니는 언제나 나를 승제라고 부르셨다.



선제가 외가집에 가는 건 드문 일이었지만, 외가에 갈 때마다 외할머니가 내어주셨던 음식이 있다. 갈 때마다 메인메뉴는 달랐을지언정, 언제나 상에 올랐던 음식이 있다. 동치미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과식을 하지 않는 아이였다. 집에서건 밖에서건 밥은 한 그릇을 넘지 않았다. 한 곳. 외가를 빼고 말이다.


외할머니의 동치미는 특별했다. 허연 사기그릇에 담겨나오는 모양새는 투박했지만, 그 맛은 예리하고 세련됐다. 없던 식욕도 불러일으켰고, 침샘에서 쉴 새 없이 맑고 묽은 침을 내뿜게 했다. 동치미만 있으면 두 그릇이 뚝딱이었다.


그래서였다. 외할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외할머니는 동치미를 내어주셨다. 명절에도 잘 오지 않는, 어쩌면 불효스러운 당신의 외손자일 텐데, 그 놈아가 좋아하는 음식이랍시고 항상 챙겨주신 게다.



2016년 5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냥 급작스러운 작별은 아니었다. 병이 있으셨고, 병이 악화됐다. 딸내미들과 아들내외는 병원에 계신 그들의 어머니를 찾아뵙곤 했었다. 외할머니의 그림자는 점차 짙어져갔었다.


아버지가 외할머니를 찾아뵐 정도였다, 심지어.

그 정도로 외할머니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작별이라고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셨을 때, 어머니는 통곡을 하셨다. 큰 지진이 난 것 같았다. 그리고 큰 지진 뒤에 여진이 남듯,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께는 잔울음이 남았다. 1년 뒤에도, 다시 또 1년 뒤에도. 어머니는 간간히 우셨다.



외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나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벌써 네 번을 떨어지고, 다섯 번째 도전을 하는 상황. 하루하루 밀려드는 벅찬 진도에 미처 외할머니를 찾아뵙지 못 하였다. 아니, 어쩌면 시험이라는 핑계로 외할머니를 외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찾지 않았거나, 또는 상황 때문에 찾지 못 했거나. 어쨌든 외할머니는 내가 오지 않을 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병원을 찾아온 동생편에 봉투를 하나 보내셨다.


재생용지로 만든 듯한 갈빛 까끌한 종이봉투. 그 안에는 현금으로 10만원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진짜는 봉투 겉면. 외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유언처럼 적혀있었다.


- 승제야. 공부 열심이 해라.



글씨를 제대로 적을 힘도 없으셨던 건지, 글자들은 한껏 삐뚤빼뚤했다. 바싹 야윈 외할머니의 몸뚱이처럼 획들은 얇았다. 슬쩍 틀린 맞춤법도 이유 없이 뭉클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남았던 건, 이름이었다. 승제. 외할머니는 평생 내 이름을 잘못 알고 사신 거였다. 경상도 억양 때문에 선재를 승제로 발음하신 게 아니라, 그냥 이름이 승제인 줄 아셨던 거다.



외할머니는 외손자의 이름도 모르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외손자가 시험에 합격하는 것도 보지 못 하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반 년 뒤.

공부를 열심이 한 승제는

만 5년 만에 시험에 합격하였다.



외할머니의 마지막 봉투는, 내게 유언이다.

모든 것들이 의미롭다.


이미 야위어 힘도 들지 않는 손으로 간신히 한 문장을 적었다는 것도, 끝내 시험에 합격한 손자를 보지 못해 마지막 메시지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이라는 것도, 맞춤법 틀리듯 외손자 이름을 틀렸다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무겁게 의미롭다.


만약 외가를 자주 찾았다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외할머니가 병원에 계실 때, 몇 번이라도 찾아뵈었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이름 두 자는 알려드릴 수 있지 않았었을까.


외할머니와의 친함이 고작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친함이라는 데에서, 그간 얼마나 외할머니께 무심했었던 건지, 얼마나 불효스러웠던 건지 깨닫게 되었다.



외할머니의 동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동치미란 건 그렇다. 스팸 굽듯이 순식간에 쓱싹 해결되는 음식이 아니다. 무우, 쪽파, 고추, 당근, 배. 각종 재료를 손질해서 준비해야 하고, 소금으로 맞추는 간이 은근히 까다롭다.


가장 주목해야 하는 건 시간이다. 동치미는 즉석 식품이 아니다. 발효 식품이다. 동치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발효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동치미는 만든다고 하지 않는다. 담근다고 한다.


외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상에 동치미가 오른 건 무슨 뜻일까. 그래, 준비되어 있었단 뜻이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한 달까지, 외할머니가 외손주 오기를 기다리며 미리 준비하고 담가놓으셨다는 뜻이다. 올지도 모르는 불효한 외손주를 위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손주는 갖가지 핑계를 대며 외가를 꺼렸다. 심지어 병원에 누워계신 외할머니를 찾지도 않았다.


외할머니는 외손자의 이름도 모른 채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의 동치미.

그 의미를 외할머니를 여의고 나서야 알아챘다.



우리 주위에는 야위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동생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이들이 그렇다. 우리는 모두 죽어가고 있다.


외할머니가 언제나 그랬듯이, 야위어가는 이들도 내게 동치미를 차려주고 있다. 알게 모르게, 커다란 챙김을 받고 있다. 단지 그것이 동치미인줄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외할머니를 여의고서야 의미를 알아챈 동치미와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오늘도 돌아본다. 오늘 내가 받은 동치미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의 동치미였을까.


외할머니의 동치미를 생각하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훗날, 외할머니를 만나뵙거든

꼭 다시 인사를 드릴 거다.


동치미, 맛있었다고.

감사했다고.


죄송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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