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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05. 2018

산사람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그냥 산 같을 뿐

#단상 #에세이 #엄홍길 #산사람 #등산


<산에서 온 눈이 맑은 사람에 대한 단상>

    '산사람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냥 산 같은 사람일 뿐이다.'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솔직히 말하면 문화 행사의 일환이었던 이번 일정은 바쁜 베이징에서 굳이 직접 가지 않아도 되는 행사였다.

    회사 아침 회의 시간에 현장 취재를 킬 할까 고민하는 선배에게 '내가 갈게요'라고 자원한 건 나였다.

    그가 그냥 보고 싶었다.

    사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KBS 9시 뉴스였던 것 같다. 

    언제적 뉴스였는지는 모르겠다. 대신 기억나는 것은 시사 뉴스가 끝나고 경쾌한 스포츠 뉴스 시그널 음악이 나오자마자 스포츠 뉴스의 톱뉴스로 나오는 그의 모습을 봤던 것 같다. 

    박영석, 허영호, 오은선 같은 유명 등산가들의 소식처럼 '세계 최고봉 등정', '세계 8000m 이상 최다 등정'과 같은 뉴스는 항시 이때 나오기 때문에 아마 맞을 것이다. 새하얀 요구르트처럼 산봉우리를 덮은 만년설 사이로 거뭇거뭇 쇳빛 바위가 보이는 에베레스트의 ㅇㅇ봉을 산소통이 없이 올랐다는 둥 하는 내용이었을 거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 그의 첫인상은 키는 작고, 높은 고도에서 내리쬐는 햇볕을 정면으로 받아선지 눈에 반사되는 반사광을 많이 쫴서인지 얼굴이 일반인보다는 무지 까맣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따금 TV 예능이나 아침 프로그램에서 그를 보았지만, 뭐 특별한 감정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2005년도엔가 MBC에서 만든 '히말라야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그의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게 됐다.

    그때까진 그저 높은 산에나 오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가 '내려오지 못한 사람들'이라 부르는 박무택, 장민, 백준호란 이름의 동료 시신을 인도하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모습을 보며 적잖이 감동 받았다.

    특히 다큐멘터리에서 내게 큰 울림을 줬던 것은 같이 산을 오르던 동료뿐 아니라 등반을 돕는 현지 전문 등반 보조원인 '셰르파'까지 살뜰히 챙기는 그의 모습이었다. 엄홍길 대장은 가족같이 지내는 셰르파가 등반 도중 사고를 당하거나 하면 그의 가족을 지원하고 직접 챙겼다. 이게 말이 쉽지 아무리 산이 좋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일을 쉽게 할 수 없는 법이다.

    그의 이런 행보는 2007년 봄 8400m 로체샤르도에 오르는 마지막 등정을 마친 이후 네팔에 학교 건립을 위한 엄홍길휴먼재단을 만드는 데로까지 이어졌다.

    사실 엄홍길 대장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우리 학교의 동문으로 나와 전공까지 같다. 워낙 느지막이 대학에 들어 왔기 때문에 나보다 학번은 두세 학번 낮은데 당시에 유명인사였던 그는 '선배'들을 상대로 특강을 가끔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특강에서 들은 내용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얼굴 때문이다.

    엥?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좋다는 소리다. 매우 근엄한 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천진난만한 웃음이 묻어나고, 쇳소리처럼 갈라지는 목소리에서도 뭔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의 깊은 눈은 고요한 호수 같다.

    내가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 기준을 '얼굴'에 둔 얼빠가 된 것은 기자 생활을 한 뒤의 일이다.

    기자들은 일반인보다 10배도 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사주네 주역이네 이런 것들은 다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인생 데이터들의 축적에 기반을 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면 대충은 눈앞에 있는 사람의 지나온 과거와 현재, 또 삶에 대한 그의 자세가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모든 신체 중에 내가 얼굴을 유난이 중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얼굴에 든 주름과 다른 사람을 의식해 지은 표정이 멈출 때 언뜻언뜻 드러나는 긴장을 놓은 모습, 심지어 눈, 코, 입의 조화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다 그 사람의 인생사가 남긴 흔적이 된다. 평소 행실이 엉망인 사람은 얼굴도 항시 죽상이고, 화가 나 있는 듯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얼굴에 '균'(왠지 모르게 매력 있고, 끌리는 느낌)이 난다.

    얼마 전 귀임한 우리 전 대장님이나 베이징 교회에서 2주에 한 번씩 예배 사회자로 연단에 서는 부목사님, 회사 옆 사무실 Y 본부의 운전기사인 리 선생님 같은 분들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균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모두 꽤 나이를 드신 분인데도 엄홍길 대장처럼 맑고 천진한 얼굴을 갖고 있다. 이건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소리가 아니다. 세상 기준으로 예쁘고 잘 생기고 따위의 수식어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이들 안에 내재해 있다는 말이다.

    엄홍길 대장은 산행 중 얻은 부상과 후유증, 또 연령이 높아지면서 오는 신체적 한계에 대한 고민을 안고 현역에서 물러나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과 희망을 평생 지탱해 주던 '히말라야의 고향' 네팔에 학교를 짓고 히말라야의 희망이 될 아이들을 돕고 있다. 그의 얼굴이 그렇게 맑고 순수하게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삶이 새겨 놓은 흔적일지도 모른다.

    아니 잘 몰라서 그렇지. 그의 최다 등반 기록에 문제가 있고, 전에 뭐야 ㅇㅇ당 공천받으려고 그러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사실은 확인해 봐야겠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간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그가 소문처럼 정계에 진출한 것도 아니고, 못된 짓을 저지르다 들통이 난 것도 아닌데 그런 소문과 선입견으로 예단을 내리고 그를 대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이 어떨지 아리까리하다면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그의 지론과 삶의 태도 등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괜히 세간에 떠도는 어쭙잖은 소문으로 선입견을 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그는 그런 흉흉한 소문으로 덮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사람은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지면 또 어떤가. 그때 가서 그에 대해 실망하고, 나의 우매함을 한탄하면 그만인 것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잘못된 행동을 한 목사나 장로를 보고, 교회를 증오하고 발길을 끊는 사람들이다. 좀 모질게 들리겠지만, 이들은 애초에 신앙의 시작이 잘못됐다. 

    어떤 종교적 인간이 종교와 관련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해당 종교의 지도자를 따르고,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좋아서 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믿는 신이나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지, 믿음의 대상이 특정한 사람이 됐을 때는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다름이 없는 셈이다.

    다시 엄홍길 대장님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가 과거에 잘못된 행동을 잘 숨겨 왔거나 앞으로도 잘못된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는 복된 일이 폄하되거나 조롱거리가 될 수는 없다. 물론 복된 일 자체가 허위로 드러나거나 그 가운데 범죄행위가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럼 그때 가서 지지를 철회하면 될 일이다. 

    아직 일어나지도, 눈으로 보지도 못한 일을 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마치 '어차피 다 죽을 몸인데 밥은 왜 먹는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행사가 끝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술잔을 나누면서 내가 느낀 그는 진중했고, 말을 함부로 뱉지 않았으며,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겸손했다. 

    대신 그가 지금 하고 있는 남을 돕는 일을 말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네팔에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를 때는 말 속에 연민과 사랑이 가득했다.

    이런 행위를 그가 가식적으로 했고, 내가 속아 넘어간 것이라면 뭐 어찌할 도리는 없다. 그래도 내가 직접 판단한 바로는 '믿을 만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좋은 일이 있거나 아주 힘든 일이 있을 때 작지만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최근 잇따른 행운들과 복된 사람들을 만났다. 아주 좋은 일이다. 이때다 싶었는데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소위 '계시'라 불리는 것이라 믿고, 그냥 계시를 행동으로 옮겼다.

    엄홍길 대장은 지금까지 평생을 산에 매달려 자신의 꿈과 희망을 좇아서 살았다고 했다. 다행히 산이 자신을 받아 줬고, 무사히 내려갈 수 있게 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제 껏 산을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앞으로 남은 인생은 사람을 위해서 살겠다'고 말이다.

    오늘은 엄홍길 대장에게서 배운 건배사로 글을 마칠까 한다.

    '히말라야의 기! 기! 기!' 

#단상 #엄홍길 #얼굴 #거울을봅니다 #거울깹니다 #히말라야기받고저출산극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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