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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06. 2018

'막귀'인 나의 음악감상 고난사

#단상 #에세이 #막귀 #클래식 #재즈 #록


<나의 음악감상 여정에 대한 감상>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많이 듣진 않는 편이다.

    일할 때 가끔 짝퉁 팟으로 듣거나 운전할 때 차 안에서 듣는 게 전부다.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냐고 묻는다면 답하기는 애매하다.

    나는 입맛은 무척 예민한 편이지만, 귀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소위 '막귀'라고 할 수 있다.

    지비안 오르페오네, 젠하이저네 하는 최고급 스피커나 이어폰을 줘봐야 아이폰을 사면 주는 번들 이어폰이랑 구분도 잘 못 한다. 예전에 음악을 한창 들을 때 용산에 헤드폰을 사러 간 적이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이것저것 차이를 설명하시면서, 

    "어때요? 확 다르죠?" 하고 묻는데 진짜 잘 모르겠어서 진땀을 빼며,

    "확실히 저음을 잡아 주는 게 다르네요"라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한 적도 있다.(대충 이렇게 말하면 되던데ㅡㅡ)

    막귀가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바로 음악을 들을 때 악기 구분을 제대로 못 하니 음악을 굉장히 주의 깊게 듣는다는 점과 음악을 고를 때 까탈스럽지가 않다는 것이다. 대충 느낌이 좋으면 듣고,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이다.

    '아니 그게 뭐가 좋아?'라고 묻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을 하자면 내 귀에도 좋게 들릴 정도면 진짜 좋은 음악이기 때문에 명반을 고르기가 쉽다.

    이렇게 음악을 고른 다음에는 정말 자세히 음악을 곱씹어 가며 듣는다.

    '이건 또 뭔소리 당가?' 무슨 소리냐면 귀가 막귀여서 악기 파트를 잘 구분하지 못하니까. 음악을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파트별로 집중을 해서 듣는다는 소리다. 또 가사가 있는 음악은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서 그 보컬이 어떻게 표현하는지 유심히 듣는다는 말이다.

    이런 음악감상 습관이 생긴 것은 전에 이야기한 5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온갖 잡다한 지식에 능하며, 책을 찰칵찰칵 찍어서 기억한다는 대학교 절친 천재 소년 J군 덕분이다.

    J군은 클라식 음악부터 록, 재즈, 일본 애니 OST 등등등 온갖 음악을 다 들었는데 대학 때는 특히 클라식을 많이 들었었다. 

    만날 레너드 번스타인이네 카라얀 이네 토스카니니네 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하면서 CD를 들고 다니기도 하고, 동아리방 고물 라디오로 KBS 클라식 FM을 늘상 틀어 놓고 그랬다. 뭐 허세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좋아해서 듣는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아주 음악과 책을 좋아했다.

    성격이 호기심 천국인 나는 괜히 J군이 만날 듣는 음악이 궁금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CD 세트를 사버렸다.

    그 뒤로 꾸역꾸역 막귀로 이 CD를 무한 반복해 들었는데 '아. 음악도 철학책처럼 수면제로 쓸 수 있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J군이 매일 듣는 이유가 있겠다 싶어서 한번은 공강 시간에 J군과 기숙사 매점에 앉아 물어봤다.

    "이거 왜 듣는 거냐?" 라고 물었더니 교향곡은 악기구성이 어떻고, 서사와 논리구조 등등 못 알아 들을 소리만 하길래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한 3개월 정도 지났을까? 계속 듣다가 보니까 막귀인 내 귀에도 멜로디를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그 시끄러운 와중에 가끔 들리기도 하고, 금관, 목관 악기 소리가 조금은 다르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둠둠' 거리는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재미지게 들렸다. 또 저건 왜 있는 건가 싶은 큰북 같은 타악기들도 리듬 파트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며 전체적으로 연주의 균형을 잡아 주는구나. 라는 느낌도 조금씩 간지떼루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 상 떡하고 차린 '전주 한정식' 차림처럼 클라식 음악은 차린 게 많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예전에 대충 듣던 음악이 굉장히 아름답게 들렸다.

    한정식을 먹을 때 쌀밥에 소고기 떡갈비를 얹어서 먹고, 느끼함을 개워내기 위해 매실 장아찌를 집어 먹은 다음, 다음 음식을 먹기 위해 동치미 국물로 입을 헹구는 성스러운 행위처럼 클라식 음악도 모든 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불연 듯 스쳤던 생각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J군이 지휘자가 누군지 어느 교향악단인지 구분해서 듣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사가 어떻고, 구조가 어떻고 했던 말들이 갑자기 이해가 확 갔다.

    '한정식이 사람에 따라 먹는 순서나 방법이 다르듯 클라식 음악도 지휘자가 누구냐,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러 색깔이 나는 것이구나!'

    라는 돈오의 경지에 다다랐다.

    그 이후는 조금 즐겁게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막귀는 막귀. 썩은 귀로 음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에는 클라식 음악은 피로도가 굉장했다.

    마치 온갖 재료를 다 집어넣어서 싼 김밥처럼 옆구리가 터져나갈 듯 귀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연주의 맛을 나름대로 느낄 수 있으면서 좀 가벼운 재즈로 주장르를 바꿨다. 냇 킹 콜, 베니 굿맨,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 빌리 홀리데이, 마일즈 데이비스까지 뭐 닥치는 대로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막귀는 어쩔 수가 없다. 귀로 듣기만 해서는 재즈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으니 책으로라도 배워 익혀야 했다. 재즈 관련 책들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빌리고, 입문용으로 'Jazz it up'이란 만화책을 사서 봤다. 아 재즈 관련 책은 봐야 머리만 지끈거리고, 나오는 이름들도 낯설기만 하다. 대신 만화책인 jazz it up은 아주 재밌고, 즐겁게 재즈의 대략적인 역사와 열전 방식의 서술로 주요 인물들에 대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재즈 역시 클라식에 비해서는 좀 덜하지만,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다. 한참을 들으니 지겹기도 하고, 자꾸 연주자마다 엇박자를 넣거나 비틀어 연주하는 게 막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좀 더 구성을 뺀 메탈로 넘어갔다.

    메탈의 세계는 또 어떠한가 알 길이 없는 나는 J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여러 그룹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로 메탈리카나 퀸의 음악을 많이 들었지만 핑크플로이드, 딥퍼플, 롤링스톤, 섹스피스톨즈, RATM, 비틀즈 등등 그룹마다 특색있는 음악을 듣는 게 즐거웠다. 또 동아리 후배들에게 추천을 받아 U2, 오아시스 같은 그룹의 음악도 서너 곡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섞어 듣기도 했다.

   락 장르가 시끄러워 정신이 사납고 귀가 피로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내 귀에는 클라식 음악이 훨씬 피로도가 높다. 락 음악의 구성은 보통 리드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 여기에 신디나 세컨드 기타 정도가 더 추가되는 정도다. 그래 봐야 클라식 음악의 그 꽉 찬 장바구니에 비하면 매우 소프트 한 편이다. 물론 난장판 같이 와장창 한 맛은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앉아 있는 시간이 많은 대학 시절을 나는 클라식-재즈-록 순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보냈던 것 같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보통은 록-재즈-클라식 순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연주의 참맛을 알면 자연히 저렇게 거슬러 올라간다는데 나는 망할 J군 때문에 클라식 음악을 먼저 들어서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피곤한 음악 여정을 했었다.

    이 글을 쓰려고 나의 막귀 음악감상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귀가 막귀여서 예민한 편이 아니니 음악을 들을 때 굉장히 주의해서 들었다는 것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세상살이도 음악감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막귀여서 상대방의 아픔이나 호소를 잘 못 알아 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굉장히 상대에 집중해야 할 수도 있다.

    예리한 칼날은 너무나 쉽게 목표물을 자르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가 뭘 잘랐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무딘 칼날은 싫든 좋든 자르는 대상을 두세 차례 더 바라봐야 하고, 어느 부분을 쳐낼지 더 세심히 관찰해야 하기도 한다.

    가끔 '아유 나는 사람이 무뎌서 그냥 남 일 신경 잘 못 쓰고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고 호소하는 분들을 만난다. 하지만 이미 이런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남을 굉장히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이런 분들은 털털하거나 무딘 성격인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자신의 그런 성격을 자책하지 말고, 좀 무디고, 뭉턱한 그 성격을 잠시 죽이고 상대방을 조금씩 조금씩 부분별로 뜯어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치 막귀로 클라식 음악의 여러 파트를 조곤조곤 뜯어서 듣듯이 말이다.

    그건 그거고, 요새는 무슨 음악을 듣는지 궁금해할 분들도 있을 거 같아 소개해 본다.

    음악은 그냥 이문세, 김광석, 신승훈, 김건모, 유재하, 토이, HOT, GOD, SES, 핑클 등등등 70, 80, 90이 짱인 거 같다. 

    아주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빳빳한 고어텍스와 답답한 내피를 벗어 던지고 바람막이 하나 입고 등산하는 것처럼 훌렁훌렁 얼마나 귀도 편하고 좋은지. 문세 횽님 사랑합니다.

#단상 #음악감상 #클래식 #재즈 #메탈 #그중에제일은이문세

++짤은 무간도에서 양조위 아재 음악감상 씬에서 나왔던 오디오스페이스AS-3i. 검색해보니 70만원대네요. 생각있으면 하나씩 들이세요.(그렇게 트로이의 목마를 심어본다.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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