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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19. 2018

한국행 티켓을 끊을 때 맛집을 생각한다

#단상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다 비슷하겠지만, 한국에 간다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다.
    어제 의무휴가 사용계획을 내면서 건강검진차 한국행 스케줄을 잡았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한국에 간다는 것은 그간 이미지 트레이닝만 했던 맛 난 음식들을 먹을 소중한 기회가 생긴다는 의미다.
    한국행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내 뇌는 온통 먹킷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가면 가족과 시간도 보내야 하고, 친지도 찾아 봬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일도 봐야 하기 때문에 생각 만큼 많이 먹지를 못한다.
    꿈을 거의 꾸지 않는 편인데 어제 소주를 좀 마셨더니 선잠이 들었는지 한국에 가는 꿈을 꿨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뉸뉴난나 하며 전주로 가는 버스표를 사고 고속도로를 내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참이었다.
    베이징발 국제전화가 걸려 왔고, 바쁜 일이 생겼으니 급히 돌아와 달라는 말이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너무 황망한 나머지 휴게소 음식이라도 먹자하고 부식 판매대로 뛰어가는데 거기에 이영자 선생님이 히트시킨 '소떡소떡'이 있었다.
   '그래 이거라도 어디냐'라며 두 개를 게걸스럽게 해치우고 버스로 돌아와 앉았는데 어찌나 서럽고 눈물이 다 나는지. 깨버렸다.
    '개꿈이지. 꿈은 반대라는데 지금부터 적어야 한다.'
    무언가 쫓기듯 온수매트 한구석에 웅크린 채로 끼니 수를 세어본다. 3박 4일, 3X4= 12끼. 건강검진 금식 빼면 11끼.
    11가지 음식을 새벽녘 칼칼한 목으로 소리 내 읊조려 본다.
    비단멍게, 주꾸미 된장 샤브샤브, 고흥수산 물회, 자연산 해삼과 거북손, 돌문어 숙회와 먹물라면, 육사시미, 서북면옥(or을밀대), 대우럭찜, 하모하모(with 양파), 족발, 한치회.
    이번 귀국길에서 먹킷리스트를 얼마나 클리어할지 모르겠다. 동선의 제약이 있으므로 50%도 성공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보고 싶다, 얼굴 보자" 다 좋다. 다만 제발 나보면 중국집 생각난다고 짜장면, 탕수육 좀 그만 먹자. 남의 아까운 끼니 귀한 줄도 모르고 사람들이 말이야.
    중국에선 중식, 한국에선 한식. 지킬 건 지키자. 기본만 해도 욕은 안 먹는다.
    달이 지고, 해가 떠오른다. 나는 차가운 새벽 공기에 날카롭게 정신의 날을 벼르면서 먹킷리스트를 다시 나직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비단멍게, 주꾸미 된장 샤브샤브, 고흥수산 물회, 자연산 해삼과 거북손, 돌문어 숙회와 먹물라면, 육사시미, 서북면옥(or을밀대), 대우럭찜, 하모하모(with 양파), 족발, 한치회.
#단상 #먹킷리스트 #제발제발50프로만 #간절함에대하여 #짜장면탕수육노머시

++짬뽕까진 봐준다. 네고 없음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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