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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13. 2018

중국에도 굴국밥이 있다

#맛객 #굴국밥 #해장

굴이 자잘한 중국식 국밥, 굴양식을 하지 않아 한국의 굴만큼 크지 않다.

  

<맛객> 중국 맛의 고장 차오저우에는 굴국밥도 있다


  '뜨끈뜨끈한 국물에 밥알과 함께 담가져 있는 씨알 굵은 굴을 푹 떠서 한입 가득 넣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나는 겨울이 되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 바로 굴이다. 그중에서도 

    '굴국밥'

    기운이 없거나 날이 추워 몸이 으슬으슬 감기 기운이 생겼을 때 굴국밥 집에 가서 똭 한 그릇 먹으면 그 이상 보양식이 없다.

    굴을 얼마나 좋아하느냐면 집에서 2시간 30분 거리인 통영에 자주 가는 굴 집을 정해두고 겨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배달시켜 먹을 정도다.

    중국에 오면서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게 됐다는 게 나에게는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중국에서 굴국밥을 발견했다.

    그것도 중국에서 가장 손맛이 좋다는 고장 차오저우(潮州) 맛집에서 말이다.

    오늘은 우리 동네 형이자 아주 능력자인 K 형님네 사무실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K형님네 사무실은 우리 사무실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린데 서로 보자 보자만 하고 각자가 너무 바빠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K형네 사무실은 우리 사무실과 같은 구역에 있지만, 우리 쪽은 외교 공관이 있는 곳이라 높은 건물이 없고 약간 낙후된 느낌이라면, K형네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어마어마한 마천루 숲을 이룬 곳에 있다.

    촌놈 서울 구경하듯 자전거를 타고 당도한 K형네 사무실은 마치 여의도 금융가처럼 세련된 느낌이었다.

    여의도가 어딘가? 샐러리맨들의 맛집 메카 아닌가. 잔뜩 기대하고 전날 과음으로 추레한 모습을 한 채 로비에서 K형을 기다렸다. 잠시 뒤 내 도착 알림을 받은 K형이 말끔한듯 추레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도심인 궈마오에 있는 CCTV 본사 건물.

    대충 몰골을 보니 K형도 어젯밤에 술을 한 다라야 정도는 푼 것 같았다. 원래는 강남 요리를 하는 저장(浙江) 식당을 예약했다는데 우리 둘 다 상태가 동파육을 먹을 만한 상태는 아니어서 건물 1층에 있는 차오저우 맛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차오저우는 내가 이미 수차례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그냥 보증수표 같은 이름이다. 일단 저 지명이 걸려 있는 집은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실패할 일이 없다. 특히나 약간 짭조름한 간이 일품인 차오저우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95% 정도 맞는다.(나머지 5%는 고수를 위해 남겨두자)

    오늘의 메뉴 선정은 내가 했다. 객이지만 먹을 거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K형은 내가 꼼꼼히 보고 고르기를 원했다. 이 형은 형수님이 엄청 미식간데 생각보다 먹을 거를 따지지 않는다.

    일단 K형의 해장 추천 메뉴인 굴탕밥을 기준으로 잡고, 메뉴를 훑어 봤다. 차오저우 식당은 워낙 많이 가봐서 대충 요리 구성을 아는 편이지만, 그래도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어설픈 선무당의 배경지식보다 낫다.

    아무튼, 전채요리는 국물이 중요한 비상상황인 데다 점심이라 그냥 패스하고, 속에 덜 부담이 가고 차오저우 지역에서 잘하는 해산물 요리 위주로 시켰다.

    중국은 삼경 중 하나인 논어에 보면 공자 슨상님이 온갖 풀 이름, 물고기 이름, 나무 이름, 짐승 이름, 새 이름을 다 적어 두셨는데 현대에는 어찌 된 일인지 그냥 웬만한 유명한 물고기가 아니면 특별한 이름을 메뉴판에 적어 놓지 않는다. 

    물론 전공 학계나 전공자들 커뮤니티에서는 구분해 쓰겠지만, 한국처럼 다금바리, 은어, 쉬리, 송사리, 송어, 숭어 뭐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분류를 잘 안 한다. 특히 민물고기류는 이게 심한데 메기나 장어 정도나 구분해 부를까 싶다. 한국처럼 동자개(쏘가리 또는 빠가사리), 메기, 가물치, 꺽지 뭐 이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림이 있는 식당에서는 그림을 보고 대충 맛을 짐작해 시키는데 오늘은 한국에 있는 은어 비슷한 게 된장 양념으로 조림해 하는 요리가 있어 시켜봤다.

    그리고 당연히 고기는 들어가야 하니 삼겹살 간장양념구이+백김치를 주문하고, 굴국밥이 조금 싱겁다는 K형의 조언을 받아 센차이(咸菜)라고 절임 채소와 오징어를 넣은 볶음 요리, 국국밥을 먹을 때 꼭 먹어야 하는 굴전, 그리고 내가 젤 중시하는 디저트로 인절미 떡구이, 흑임자 떡구이, 부추 만두로 구성된 딤섬 세트를 시켰다.

    역시 맛있는 순서대로 소개하자면, 단연 굴국밥이 최고다. 근 2년간 못 먹었던 한과 여기에 차오저우 해산물 요리의 정수가 합쳐지면서 '와. 이 맛이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또 오바하네. 어떻게 한국 거랑 같아'라고 의심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만, 굴의 사이즈가 잔 것 빼고는 한국 국밥이랑 거의 흡사하다. 차오저우는 광둥에 있는데 어찌 조선반도의 맛이 날까. 항시 궁금한 부분이다. 

    굴 씨알이 작은 이유는 중국에서 굴양식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이 작은 굴의 맛이 옛 맛이 나서 오히려 더 좋다고 하는데 내 경우는 그 탱탱한 굴 살이 너무 그립다.

    나중에 맛 칼럼을 쓸 기회가 있으면, 두 지역 간 연관성에 대해서 역사적 고찰을 좀 해봐야겠다. 연구 없이 추정하기로는 혹시 구로시오 해류가 남해안으로 빠져나가는 위쪽으로 조선반도에서 출발해 서해안 쪽을 지나면 광둥에 가는 물길이 있는 거 아닌가 싶다.

    반대로 광둥에서 해류를 타고 가면 한반도에 닿을 수 있다고 하니 어떻게 생각하면 차오저우의 맛이 한반도로 전해 온 것일 수 있다.

    최근 제주도와 중국 대륙 간의 연계성을 연구하는 향토학 연구가 활발한 데 이들 학회에 따르면 '서귀포'라는 지명도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떠났던 서복(徐福)이라는 인물과 연관이 있다.

    서복은 선단을 꾸려 불로초를 구하려 제주에 왔다가 서귀포를 통해 들어왔고, 다시 돌아갔다고 한다. 이때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 해서 이름을 '서귀포'(西歸浦)라 지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굴국밥은 통영의 맛은 약 70% 보유하고 있다. 술 먹은 다음 날은 종종 들러서 해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은 오징어 센차이 볶음. 차오저우는 소고기도 물론 엄청 뛰어나지만, 해산물을 다루는 솜씨도 일품이다. 그래서 해산물 죽을 주메뉴로 하는 차오저우 죽 집이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데 마치 한국의 본죽 같은 느낌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본죽보다 훨씬 맛있다. 나도 본죽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본죽이 맛없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중국인들이 입에 달고 살기 때문에 아마도 더 발달한 것 같다. 아 그래 봐야 오뚜기 옥수수 크림스프에는 다 상대가 안 되니까 뭐 그 정도 맛은 아니라는 것은 기억해두자.

    다음은 저 이름 모를 은어(가명) 요리가 너무 맛있다. 죽에 들어간 양념 베이스와 같은 베이스 양념에 된장 소스를 넣은 건데 된장이 말이 된장이지 텁텁한 게 아니라 메주콩을 사알짝 발효시킨 된장이라고 보면 된다. 된장이 하도 맛있어서 한 알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어봤는데 엄마가 메주 만들려고 메주콩 삶을 때 옆에서 주워 먹었던 생각도 나고 그랬다.

    일단 콩 사이즈는 메주콩보다는 작다. 그런데 잘 발효가 됐는지 부들부들하고, 양념이 고루 배어 있어 짭조름한 맛이 제대로 한국인의 간이다. 고기는 그냥 은어 맛이 났다. 어쩌면 진짜 은어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여기 1급수가 운남 같은 데 말고 있나 싶고,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 평소 같았으면 면을 추가로 시켜서 소스에 비벼 먹었을 텐데 나에겐 굴국밥이 있으니까 참았다.

    다음은 삼겹살+백김치. 이런 구성도 약간 의심스러운데 중국에서는 느끼한 음식이 나온다고 해서 절대로 간이 센 곁들임 반찬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차오저우는 꼭 요렇게 한국인 입맛에 맞는 요리 구성을 보여준다. 아. 의심스러운데 알 방법이 없네. 맛은 한국 김장김치 보쌈이 25000배 정도 맛있는데 그래도 준수한 맛이었다. 백김치가 한국 것처럼 상큼하고 시원~~~한 맛이 안 나기 때문에 뭐 답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마지막은 굴전. 굴전이 점수가 낮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아는 굴전을 하기에는 여기 굴은 너무 씨알이 작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굴이 잘 안 난다. 그래서 저기 유럽에 있는 굴을 수입해 오기도 하고 그렇다. 진짜 한국 굴이 중국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나는 대박이 날 것으로 생각한다.

    굴이 작다 보니 굴전은 바삭함으로 승부를 거는데 아니 바삭하려면 야채 튀김 먹지 뭐하러 굴전을 먹겠나. 굴이 어딨는지도 모르게 씹는 맛도 없고, 공사장 함바집에서 닭 한 마리 넣고 닭곰탕 20인분 끓인 듯한 맛이다.

    오늘의 디저트는 100점 만점에 95점이다. 이게 어떤 맛이냐면, 인절미를 구워 먹어 본 사람은 알 거다. 겉은 바삭하게 구워졌는데 안은 쫀득한 그 맛. 거기에다가 요 인절미에는 안에 달큰한 소가 들어있다. 맛없는 소가 아니라 인절미에 묻히는 콩가루 같은 소가 들어있다. 흑임자 역시 비슷한 형태인데 나는 흑임자를 무지하게 좋아하고 중국의 흑임자는 정말 맛이 좋다. 그러니까 당연히 맛있지 뭐유. 부추 딤섬은 약간 밀렸는데 옆에 원빈, 정우성이 서 있으면, 박보검이 어떻게 되겠나? 애봉이지 뭐.

    이 식당은 아마도 꽤 가격이 나갈 것 같았다. 식기도 그렇고, 인테리어, 입점 위치, 맛을 보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인가. 돈 잘 버는 K형이 알아서 낼 텐데. 우하하핳하하하핳하. 

    그리고 K형이 사무실에서 커피도 주고, 와인도 한 병 줘서 가져 왔다. 호주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시라즈 와인이었는데 호주에서 시라즈가 되겠어? 뭐. 내가 시라즈에 성공해 본 적이 없어서 선입견을 가지고 먹어 볼 건데 나중에 먹고 후기 남기도록 하겠다.

#맛객 #차오저우 #굴국밥 #너무맛나 #숙취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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