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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Dec 21. 2018

'가식예찬'...가면도 쓰다보면 얼굴이 된다

#단상 #에세이 #가식예찬 #가식

<가식을 떠는 나에 대한 단상>

    '가식예찬'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비단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도 가식은 가끔 훌륭한 관계 유지 툴이 돼 준다.

    '에이, 진짜 진정성 드럽게 없네'라고 말하는 당신도 사실은 상대의 가식이 썩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식은 그래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 꼭 떨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와. 진짜 진정성 1도 없다'

    이 말 속에는 진정성이 0.5%는 담겨 있군.이라는 뜻도 함께 내포돼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거의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남을 대할 때 진정성이 0에 수렴하기 때문에 0.5% 정도라도 진심을 담았다면 훌륭한 사회생활 스킬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최소한의 가식도 없는 이들을 가끔 본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에티켓이 없는 사람' 또는 '싹아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성선설을 믿는 편이다. 다만, 우리의 선한 본성이 세파에 지쳐 타락해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식은 이런 컴컴한 인두겁을 쓴 순백의 자아를 조금이라도 발현하게끔 껍질에 붙은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 같은 존재다.

    가식이 또 하나 좋은 점은 진정한 나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한껏 멋을 부린다거나 굉장히 높은 이상향에 맞춰 떨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일상생활이 쓰레기 같은 연예인도 방송 카메라 앞에 서면 두 손을 합장하며 입술을 검지 손가락에 가져다 댄 뒤 '어우~ 감사해요'를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가식의 좋은 점은 차고 넘치지만 하나만 더 말해 보자면, 가식은 오염이 된다. 아니 전염이 된다고 해야 맞겠구나.

    월요일 아침에 친한 동료와 커피를 마실 때 세상 얄미운 직장 상사가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으레 가식을 떨며 "부장님 커피 드실래요?"라고 인사말을 건넸는데, 지나가던 부장도 빈속에 속이 쓰리지만 가식적으로 "아이고, 그럼 감사하죠"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본부장이 "나도 마실 커피가 있나?"라고 묻는다. 그럼 속이 쓰린 부장은 얼른 나에게 애호박 미소(뭔가를 짤 때 상대에게 신호를 주는 것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안면을 살짝 2회 윗 방향으로 튕기는 행위)를 지으며 "ㅇㅇ씨가 그럴 줄 알고 미리 내려 놨네요"라며 손에 든 커피를 건네는 가식의 앙상블이 펼쳐진다.

    이런 가식의 향연은 무료하고 삭막한 직장생활에서 그래도 썩 괜찮은 한주의 스타트가 되어 줄 것이다.

    그렇다. 가식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다.

    나는 가식을 무지 잘 떠는 사람 중 하나다. 가식을 최대한 열심히 떠는 편인데 가식이 반복되면 가식의 면사포가 내 얼굴에 씌워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식도 무한 반복하면 나의 성정이 되고, 한껏 높은 기준에 맞춘 가식이 진짜 내 성정이 됐을 때는 나름 훌륭한 자기 정체성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가식에도 진심이 담기게 되고, 우리 사회는 가식으로 채워진 아니 에티켓이 넘치는 사회가 된다.

    사람을 대할 때 '나는 너무 가식적이야'라고 자책하지 말자. 처음부터 선행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성심성의껏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아마도 마더 테레사, 간디, 상떼 빼제르, 소록도 손양원 목사, 오쇼 라즈니쉬, 크리스티나 무르티, 슈바이처 박사 정도나 되는 위인들이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니다 이분들도 사실은 항상 시험을 당하면서 수행하듯 가식행위를 연마해 자기의 내면을 갈고 닦았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가식을 생각해 내서 행동으로 옮긴 것만 해도 당신은 사회화 기능이 패치된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식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을 만나고 있는지 떠올려 보자. 그들에 비해서 당신은 얼마나 아름답게 가식적인 사람인가.

    여기서 멈추지 말고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해보자 "ㅁㅁ씨는 참 예의가 발라요"라고 말이다. 그러면 가식의 씨앗이 그 사람의 마음에 심겨서 아름드리나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식은 그렇게 우리 사회에, 내 삶에, 주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나의 가식 예찬은 여기까지다. 가식적인 글을 읽어줘서 고맙다.

    가식적으로 칭찬의 댓글과 라이킷을 남겨 주고 가길.

#단상 #에세이 #가식예찬 #가식메이크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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