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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an 14. 2019

대작에는 대가의 인생이 온통 담겨 있다

#단상 #대가 #에세이

한국사진 1세댜 임응식 선생님 작품

<동양화와 사진에 녹아 있는 대가의 인생에 대한 단상>

    '그리는 것은 하루지만, 그 획을 그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 살아온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하루 만에도 그려내는 동양화와 찰나에도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일 년 내내 매달려도 완성할 수 없는 서양화와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이 온당할까.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떠올린 적이 엄청 많을 것이다.
    최근에 중국 민생은행 갤러리에서 열린 신(新)수묵화 전시와 쓰리 쉐도우 포토그라피 뮤지엄에서 열린 한국 사진작가 1~3세대 기획전 '그리팅 프롬 사우스 코리아'를 보면서 나도 이런 문제의식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서양화, 특히 유화의 작업 과정을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이 이뤄진다. 말 그대로 대작을 만드는 것이다.
    반면, 동양화 작품은 짧으면 몇 시간, 길어도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면 작품이 완성된다.
    지난달 우연한 기회에 만나 뵙게 된 허달재 선생님께도 외람됨을 무릎서고 여쭤봤는데 하룻밤 새 큰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예술품의 가치는 똑같은 것인가?
    예술에 관심이 많은 나였지만, 사진 전시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운 좋게도 한국 사진계의 대가 5명이 참여하는 전시를 첫 전시로 봤다.
    한국 사진계의 올스타를 한 자리에서 본 셈이니 앞으로 볼 사진 전시가 시시해질까 걱정일 정도로 너무 좋은 전시였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중간중간 이 작품들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 고민에 잠겼다.
    동양화와 서양화에 대한 가치문제에서 연장된 고민이랄까.
    전시 개막 전날부터 만난 사진계 거물들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들은 대답은 이런 고민을 깨끗이 일소할 만큼 눈이 번쩍 뜨일만한 현답(賢答)이었다.

    '그리는 것은 하루지만, 그 획을 그어 내기 위해서는 그간 살아온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

    명언이다. 이런 게 명언이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지 내가 봐 온 대가들의 작품은 모두 똑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허달재 선생님의 그림이 그랬고, 이번에 사진전에 참여한 작가님들의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으로 발현하는 시간이 짧을 뿐이지 그 작품이 탄생하기 위해 작가들은 평생을 두고 고민해온 것이다.
    회화와 조각 작품이 높고 낮음이 없듯이, 그림과 글의 가치에 높고 낮음이 없듯이, 음악과 미술이 높고 낮음이 없듯이 예술은 표현 방식으로 가치가 규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명작은 나 같은 문외한이 봐도 '좋다'라는 진리다.
    그러니까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전문 큐레이터나 명작을 알아보는 눈은 같다는 뜻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김동욱 작가님의 스승님인 박기호 선생님과 길게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술잔을 함께 기울이며 나누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참 좋았다.
    그자리에서 박기호 선생님은 한국 1세대 사진작가인 임응식 선생님의 작품이 너무 좋았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셨다.
    그 사진에는 이번 전시 준비를 위해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60대 정도 돼 보이는 중국 인부가 임응식 선생님의 작품에 매료돼 작업하는 것도 잊은 채 빨려 들어가듯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전쟁 전후 그 서슬 퍼런 시절 라이카 카메라를 메고 역사의 현장 곳곳을 누비며 셔터를 눌러 대작을 만들어 낸 임응식 선생님의 작품은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중국 인부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는 시간은 고작 1초였을 테지만, 임응식 선생님의 작품에는 그의 고뇌와 민족상잔의 아픔, 해방의 기쁨, 미학적 감각, 사진작가의 테크닉이 모두 담겨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사진을 예술의 영역에 넣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이번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리 생각했다.
    방법의 차이로 예술의 높낮이를 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허달재 선생님과의 만남, 한국 사진계 대가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확실히 알게 됐다.
    예술이 글작가를 만나면 글로, 음악가를 만나면 음악으로, 화가를 만나면 그림으로, 사진작가를 만나면 사진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가들의 삶 전체가 녹아 있고, 치열한 고민이 켜켜이 쌓여 있다.
#단상 #에세이 #사진 #예술의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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