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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08. 2019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 진료실에서

#에세이

<서울대병원 어린이병동 대기실에 대한 단상>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어디에 처음 나온 글귀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요새 '혜자스럽다'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인 김혜자 선생님의 동명의 책에서 이 글귀를 처음 봤다.
    내가 신을 실로 원망(?)했을 때는 내가 죽도록 힘든 때도 아니고, 강인한 울엄마가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을 때도 아니며, 어린 누나가 생명이 오가는 병을 오진 받았을 때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가 직장 종양 수술을 받았을 때도 아니다.
    그리고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에서 앳된 여종업원을 만났을 때도 약간 사회에 대한 분노는 느꼈지만, 신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럼 언제인고 하니 종편과 보도채널 성금 모금 광고와 김혜자 선생님의 책에서 말라 비틀어져 꺼져 가는 어린 생명을 보면서였다.
    생각해보니 당시에 내가 누굴 동정하고 말고 할 형편도 아니었는데 책장을 고통스럽게 넘기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다 넘겼을 때 자연스레 무릎을 꿇고 '이건 아니지 않나요?'라는 원망의 기도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사실 몸이 썩 좋지 않다.
    그러니까 죽을 만큼 안 좋은 것은 아니고, 그냥 내 나이보다 딱 20년 더 나이 먹은 것 만큼 좋지 않다.
    이유가 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타고나기를 튼튼이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몸을 너무 함부로 쓴 게 화근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 한편으로는 태어나기도 한량 아빠를 닮아 애초에 약했을 수도 있는 데 역시 몸을 함부로 썼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서울대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내가 가는 두 병동은 매우 극단적인 풍경을 내 눈앞에 펼쳐 놓는다.
    일단 내과에는 평균 연령이 70세 이상 정도 되는 환자들이 득실득실하다. 당뇨와 고혈압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인데 앓는 소리를 하시는 것에 비해 그래도 정정하시다.
    또 한 곳은 어린이 병동인데 이곳은 지옥이 있다면 저 아이들의 부모 얼굴 속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심란하기 그지없다.
    지금 당신의 삶이 비루하고, 절망적이고, 포기하고 싶다고 느낀다면 서울대병원 어린이 병동에 한번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 맑디맑은 눈망울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 앞에 마스크와 빵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갱년기 누님들은 눈물을 한 바케스는 쏟아 내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올 정도로 참혹하다.
    나는 어떻냐고? 어려서는 눈물을 한 움큼 쏟았겠지만, 지금은 그냥 그 어린 눈망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눈으로든 머릿속으로든 잘 기록해 두려고 노력한다.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몸속의 병마에 시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앓는 병 따위는 겨우내 둬 서너 번은 지나쳐 가는 감기에 불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것도 아닌 게 된다.
    고통에 진절머리가 나서 칭얼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호수와 단이를 떠올려 안심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내가 지독히도 이기적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혐오에 휩싸이기도 한다.
    얼굴 안에 지옥을 품은 부모들은 가끔 미소를 지어도 얼굴의 반이 그늘로 가려져 있다.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하루에 수만 번도 더 되뇌였겠지.
    나는 기독교 신자지만 휴거나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 느낌에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말세가 오진 않을 것 같아서다.
    인간의 생이 100년이라고 보면 앞으로 60년 정도가 남았는데 세상에는 아직 12명 이상의 의인이 남아 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어린이 병동에 오면 어서 빨리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와서 이 병마를 싹 거둬가 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애들을 아프게 해서 얻고자 혹은 보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부모의 연단?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연민의 부활? 아니면 혼탁한 세상에 잘못 내려보낸 천사를 얼른 데려가기 위한 빅픽쳐? 아무리 종교적인 회로를 돌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이 병동에서 검사를 받고 있노라면 난처하게 마주치는 것이 있다.
    바로 아기 천사들이 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뽀로로 모빌이나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모니터다.
    검사를 받으며 누워 있을 때 이런 도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환경과 내 커다란 몸뚱이의 언밸런스함에 실소가 터지곤 한다.
    물론 나를 검사하는 임상병리사 선생님도 같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내 뒷순번 아기 천사들도 가끔 "저 삼촌은 왜 아가 침대에 누워"라는 말을 해 지옥 속에 사는 부모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오늘 문득 고통에 울부짖는 인터넷 속 사람들을 보며 그 어린 눈망울들이 떠올라 오랫동안 머릿속에 넣어 놨던 생각을 적어 봤다.
    그리고 나직이 이런 기도문을 외워 본다.
    '낫게 해줄 거 아니면 빨리 데려라도 가세요'
#단상 #서울대어린이병동 #아기천사들 #삶이힘들때아래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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