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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Feb 21. 2019

<맛객> 이제는 '전설 속 용이된' 옛날식 중국식당

#맛객

<맛객> 옛날식 중국식당

    ++이글은 현존하지 않는 호시절 옛날 중국 식당을 기억하며 쓴 글입니다.

    '이제는 전설 속 유니콘이 된 옛 식당들을 기리며'

    그러니까 내가 중국에 처음 왔던 때가 2002년 겨울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온 게 2007년.

    대충 환율이 120원~130원대였으니까 상당히 체감 물가가 쌌고, 게다가 그땐 중국에 있는 모든 게 쌌다.

    울아빠의 한량 피를 물려받은 나답게 유학 시절 나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수업 째고 북경외대 옆에 있는 동북 가정식 식당에서 주요 일과를 보냈다.

    식당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죽치고 앉아서 주문해 먹고, 해주는 거 먹고, 신메뉴 먹고, 직원들 식사할 때 옆에 끼어서 먹고, 그랬다.

    수업 교재 내용은 잘 몰라도 식당 메뉴판에 있는 '황룡소고기대파볶음', '삼색지상채소볶음', '서호계란김탕', '항저우 솔방울 탕수 물고기', '본격 현지맛 외할머니 전병' 뭐 이런 무협지에 나올 거 같은 메뉴 이름은 잘 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메뉴판 보면서 키득키득거리며 진짜 한량처럼 지냈던 내 인생 최고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당시 나의 몰골을 설명하면, 수업 받을 때 멀리 떨어진 학교 건물 간 이동을 위해 산(이후 도둑맞고 다시 훔침)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더운 날은 윗통을 벗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머리는 동네 거리 이발소에서 깎았는데 한국 돈으로 몇 백원 주고 깎았으니 뭐 대충 상상한 것보다 약 만배 더 괴랄하다고 보면 된다.

    이 식당에는 샤오량이라고, 주성치 닮은 팀장급 홀서빙 직원이 있었는데 나랑 만날 놀고, 먹고, 가게 끝나면 셔터 내리고 술 퍼먹다가 주인 누님한테 혼나고, 가게서 쫓겨 나면 우리 기숙사 가서 맥주 마시면서 위닝11 하다가 자빠져 자고 하던 친구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당시 맥주 대병이 한국 돈 300원 수준이었다. 진짜 천국이 따로 없었구나.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 샤오량은 요즘처럼 핸드폰 메신저가 발달했으면 연이 닿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연락이 끊겼다. 아마도 고향인 내몽골로 돌아갔지 싶다.

    그때도 만날 술 먹으면서 "빵꺼(나를 부르는 호칭), 나 업소용 세탁기 살 돈만 모으면 와이프랑 내몽골로 갈거야"라고 입버릇처럼 했으니 말이다.(어. 제수씨는 아니래ㅡㅡ)

    아무튼 그때 식당이 어땠냐 하면, 궈바오러우(锅包肉·한국선 전분 탕수육) 같은 메뉴가 18위안인가 했다. 탕수육 같은 것은 15위안대, 당시 환율로 하면 한 2000~3000원선이니까 한국서 탕수육이 15000원대였으니 정말로 헤븐이 따로 없는 시절이었다.

    물고기 요리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수이주위(水煮鱼) 같은 것도 30위안대였다. 메기가 들어가는 데 3000원이라니 오마이갓!

    그때 복학생 옵빠였던 나는 우리 반 통쉐(학우)와 테니스 클래스 니혼 학우(특히 여학우)들에게 밥을 참으로 많이 샀었는데 전채 요리부터 메인디시, 주식,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시켜도 채 2만원이 안 나오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이 아니...호시절이었다.

    당시 밥을 다 먹고 나서 호기롭게 "마이딴!(계산이요)"을 외치곤 했었는데 그러면 신세지기 싫어하는 니혼 여학우들이 "키무상, 부야오 부야오, AA즈"(옵빠, 아냐 아냐 더치페이로해욧)하곤 했었지. 껄껄껄.

    어제 한국에서 오신 예술계의 대가 선생님을 모시고 베이징 외곽에 있는 식당에 갔다가 불연듯 그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워낙 식재료 물가가 올라서 가격이 엄청 싸진 않았지만, 그래도 베이징 시내보다는 절반 정도 싼 가격에 양도 훨씬 많고, 인심도 넉넉했다.

    술과, 특별요리인 광어 중자 요리를 빼면, 한 200위안대에 장정 3명이 넉넉하게 먹었으니 3만원에 진수성찬을 받은 기분이었다.

    요새 호화로운 식당을 많이 다녔는데 가끔은 이런 옛스러운 식당을 찾아가 추억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맛이 화려하고, 엄청나진 않지만 투박하고 정감있는 요리들이 많이 그립다.

    위생이야 뭐 아침에 찾아오는 설4를 오롯이 나의 몫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아, 그립다. 그 시절'

#맛객 #중국옛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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