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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r 20. 2019

'어레인지와 안파이' 한중의 서로 다른 네트워킹 방법

#에세이

<'어레인지와 안파이' 한중의 서로 다른 네트워킹 방식에 대한 단상>

    'arrange 와 安排(안파이)'
    중국의 독특한 문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게 뭐가 있을까?
    음. 아마도 독특한 네트워킹 시스템인 '관시'(关系) 정도가 이방인들이 가장 많이 들어보고, 관심 있는 것 아닐까.
    모두들 관시, 관시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겠지만, 이게 무슨 이야긴지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는 사람은 무척 적을 것이다.
    나도 유학생 시절에는 관시라고 할 만한 관계를 형성해 보지도, 목격해 본 적도 없다.
    운 좋게 특파원을 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가끔 구경할 수 있는 자리를 하게 됐는데 여기서 관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관시란 사실 '관계'라는 말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그리 단순하게 번역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관시는 학연, 지연, 세대를 이어 형성된 혈연 등을 포함하기도 하고, 비즈니스를 함께 진행하면서 형성되는 파트너십일 수도 있기 때문에 딱 떨어지게 뭐라고 정의하긴 힘들다.
    다만, 우리가 이 관시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은 중국인들의 네트워킹 방식 중 하나인 안파이를 관찰해 보는 것이다.
    기자들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이러저러한 네트워킹 자리에 동석하는 경우가 많은 데 여기서 내가 느낀 한국과 중국의 네트워킹 차이를 설명해 보겠다.
    일단 누가 누구를 소개하는 자리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한국은 이런 자리를 마련할 때 "어. 그거? 내가 어레인지해볼게"라는 정체불명의 한영 혼합문을 사용해 표현한다.
    중국의 경우는 "我来安排吧"(워 라이 안파이 바)라는 말을 사용한다.
    안배라는 뜻의 안파이는 정말 재미있는 말인데 기본 뜻은 '준비해 두었다', '무언가를 다 계획해 실행하겠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레인지와 안파이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한국에서 네트워킹 좀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로 일이 성사되게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보다는 자신이 부각되거나 소리만 요란하고 실질적인 성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나도 민원을 많이 처리하는 편인데 넓은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꽤 신경 써서 일을 처리해도 좀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한국에서는 뭔가 부탁을 하는 쪽이나 부탁을 받은 쪽이나 네트워킹을 통해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게 기대를 안 해서 일이 안 되는 것인지, 일이 자꾸 안 되다 보니 기대를 안 하게 된 것인지 선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더 선진적인 시스템이 정착된 사회라고 볼 수도 있겠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관시가 있는 누군가가 안파이를 한다고 하면 일이 굉장히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안파이라는 말은 진짜 확실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 사용하는 어휘다.
    실제로 나의 민원 사항을 부탁받은 상대는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또 이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안파이는 '관시'라는 믿을만한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지는데 중국인들은 관시가 있는 인사가 부탁을 해올 경우 정말 성심성의껏 문제를 해결해 준다. 반대로 자신이 그 상대에게 민원이 있을 때는 그만큼 기대치를 가지고 부탁을 한다.
    또 하나 한국과 중국의 네트워킹 차이점이 있는데 일종의 에티켓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만약 내가 A라는 사람을 통해서 B를 소개받았다면, 다음에 무슨 일로든 내가 B를 만날 때 반드시 A를 동석시키거나 A에게 B를 만나는 용건을 알리고 만남을 가진다.
    A가 사정이 있어 자리할 수 없으면 나와 B만 자리를 가지면 되지만, A에게 아무런 고지 없이 둘이 만난 것을 A가 사후에 알게 될 경우 굉장히 기분 나빠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내가 소개한 두 사람이 주선자를 제치고 속닥속닥 일을 도모하다가 '난 널 믿었던 것만큼 내 친구도 믿었기에'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점에서는 중국 쪽의 안파이가 조금 더 예의가 있어 보인다.
    기자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이렇게 중간에서 허브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안파이 에티켓만큼은 중국에 와서 내가 배운 좋은 생활 습관이 아닌가 싶다.
    이런 에티켓은 나와 A의 관계를 돈독하게 할 뿐 아니라 나와 B, 더 나아가 C, D, E, F까지 관계를 확장하도록 돕는다.
    피상적으로 사람을 소개하는 어레인지보다는 안파이가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금 과한 것 아니냐고도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내가 상대를 배려해 줬다면, 나도 다음에 그와 같은 호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안파이의 묘미다.
    과거에는 한국에도 이와 같은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생활방식이 점차 서구화하면서 사라져 가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어제 우연히 참석한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안파이가 두 차례 있었는데 주선자 역할을 하는 분이 때론 단도직입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기도 하고, 상대가 조금 겸연쩍을 수 있는 부분은 넌지시 부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수 제대로 배웠다.
    이 분은 자신과 관시가 확실한 상대에게는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부탁을 받는 상대의 기분을 추워 주기 위해 스피커 폰으로 통화해 부탁하는 쪽의 감사인사를 직접 전하게 했다.
    반대로 그리 가깝지 않은 상대에게는 강도가 약한 수준으로 조심조심 부탁하면서도 상대가 민원 사항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언급하는 모습이 앞선 일처리 방식과 대조되면서 '이게 중국의 안파이 문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중국도 점차 관시 문화가 사라져 가겠지만, 지연, 학연, 혈연에 얽매여 비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관시 문화를 걷어 내고 '안파이'라는 형식만 두고 본다면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어레인지와 안파이 중에 뭐가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내 경우에는 안파이가 더 맞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역시 금진방인 것이다. 아. 이제 흙진방이구나.ㅠㅠ.
#단상 #어레인지와안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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