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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r 24. 2019

인생을 관조하는 어른들을 만나는 즐거움

#에세이

<인생을 관조하는 어른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대한 단상>


    ++어제는 기라성 같은 인생 선배, 그것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인생 3막을 시작하시는 분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 봅니다.


    '시니어'

    우리말로 하면 '어른'.

    한국 사회에서 시니어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어른을 만난다는 것이 왜 어려우냐면, 일단 세대 차로 인해 공감대 형성이 안 된다.

    '어른'이라는 말에는 연배든 내공이든 나를 기준으로 고하(高下·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라는 상대적 우위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그러니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또는 내가 배울 점이 있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다 어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갈수록 우리 사회의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다시 공감대라는 조건으로 돌아가보면, 나보다 윗 연배 어른들은 살아온 경험을 우리 세대와 공유하기가 어렵다. 이건 우리 세대와 우리 아랫세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멀게는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산업화, IMF, IT혁명을 쭉 거치는 역경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 불리는 성공 신화 속에 풍요롭게 자란 우리 세대와 소통하는 것 자체가 서로 다른 톱니바퀴가 절대 아귀가 맞지 않는 것처럼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윗세대가 보기에는 우린 무궁무진한 기회와 좋은 조건 속에서 볼멘소리나 하는 나약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반대로 우리 세대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헤쳐왔지만, 성공의 기회를 눈으로 직접 보기도 하고 체험하기도 한 윗세대는 행운을 쥔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의 차에서 기인하는 서로 간의 공감 부재가 항시 세대 간 대화를 단절한다.

    나는 어떤가?

    나는 어른들을 만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내 경험은 아닐지라도 그분들의 삶에 녹아 있는 성공의 경험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어려서 영웅 만화를 보는 것처럼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갖게 된 내 인생철학과 그들이 푹~ 고아 삶은 인생의 진액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말을 맞춰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제 내가 만난 분들은 인생을 살아오고 관조한 뒤 절감했던 자신만의 철학을 한마디로 줄여 표현했다.

    기억나는 대로 하나하나 적어보면,


    '내가 살아 보니 사회에서 명인이 된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한다. 하지만 남을 위해 자신을 뒤로하고, 나보다 남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 봤습니다만, 성공한 사람은 인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사람들이 뒤에서 그 사람을 욕한다면 결국 거꾸러지고 만다'


    '나는 이제 막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여러분을 만나 잘 배우고 있어 너무 행복하다.'


    '내가 안락한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나의 것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분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 인생 3막을 잘 만들어 나가고 싶다'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철학이 담긴 결과물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 그저 묵묵히 우리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다 주옥같은 말이다.

    어제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성공'이라는 뱃지를 달고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이 인생을 다 살아내고, 또 한 차례 큰 굴곡을 넘어와 꺼낸 말에는 깨달음과 진심이 담겼다.

    이런 말을 듣는 자리에 함께하는 것은 우리 세대 친구들에게 그리 쉽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내가 어제 가장 공감했던 말은 바로 '인성'이란 부분이다.

    다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모두 상대를 향한 배려가 있었고, 그런 인성을 바탕으로 그 자리까지 가신 분들임이 틀림없었다.

    내 평소 지론을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나는 '희열'을 느꼈고, 마음 한편에 자리한 '이렇게 살아가도 되는 것일까'하는 불안감을 일소했다.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청년들은 열심히 목표를 향해 뛰어가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다. 어른들은 연륜이 담긴 지혜를 청년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자기 일이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제대로 방향을 잡았는지 불안감이 든다면, 저만치 앞에서 경주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인생의 선배들을 만나 방향타를 바로 잡아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들에게서 받는 '훈수'는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바로 가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단상 #어른들 #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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