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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3. 2018

우락부락한 로커가 통기타를 잡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단상 #보헤미안랩소디 #퀸



++이 글은 일하다 말고 딴짓하다가 '추천곡 좀요'를 외친 SNS 친구와 댓글에 메탈리카의 'Nothing eles matters'를 추천하신 또다른 SNS 친구인 김희훈 (Heehoon Kim) 님에게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오늘도 팔만대장경처럼 길지만, 퀸을 주제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기념으로 쓴 글이니 읽어 보세요.

    대학시절 도서관에 처박혀 지낼 때 노동요 아니 공부요(謠)로 듣던 음악이 두 가지가 있다.
    나는 뭘 질려 하지 않는 편인데 그때도 그랬다. 매일 같이 이 두 가수의 음악을 들었다.
    이 두 가지는 사실 음원이 아니라 정확히는 영상이다.
    하나는 퀸의 1986년 윔블리 콘서트 실황, 또 하나는 메탈리카의 2006년 내한 실황을 MBC에서 제작한 영상이다.
    ASUS 노트북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서 책을 읽을 때나 시험공부를 할 때나 항시 저 음악을 틀어 놓고 들으면서 했다.
    음악적 취향이 좀 두서없는 편인데 당시에는 이 두 그룹이 유행하던 시절도 아니었는데도 엄청나게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떤 것에 끌려 이 음악들을 들었던 것일까 생각해 봤다.
     먼저 메탈리카 내한 실황을 볼 때마다 어려서 누나랑 손으로 전기놀이를 할 때마냥 저릿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 생각났다. 그 살짝 소름까지 끼쳤던 이 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보컬이자 세컨드 기타인 제임스 헷필드가 '엑스터스 오브 골드'나 '엔터 더 샌드맨' 같은 노래를 부르며 굵직하면서도 시원시원한 목소리를 쭉쭉 뽑아낼 때?
    리드 기타리스트인 커크가 원피스의 해골변태 담당인 '브룩'같은 몰골로 비틀비틀하면서도 현란한 기타 리프를 뽐내며 솔로 파트를 연주할 때?
    드러머인 라스가 육수를 쭉쭉 뽑아내면서 드럼 스틱으로 북어를 두들기듯 미친듯이 드럼을 난타할 때?
     안타깝게도 내 기준에서 위에 언급된 장면에는 답이 없다.
    물론 관객과 멤버들이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다 같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헤드뱅잉하고, 제자리서 펄쩍펄쩍 뛰는 장면은 몸속 아드레날린 분비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전율을 느끼는 순간은 통기타만 덩그러니 놓인 무대에서 보컬 제임스가 성대 근육에 힘을 빼고 나직이 '낫띵 엘스 매터'의 도입부인 'So close no matter how far'를 부를 때다.
    말 그대로 반전.
     갓킹제너럴이순신아바타스티븐시걸견자단 같이 생긴 제임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낫띵 엘스 매터'를 부르는 순간은 메탈리카의 모든 실황 영상에서 내가 백미로 꼽는 장면이다.
    기타의 멱살을 야무지게 잡은 저 두텁떡 같은 손을 가진 턱수염 아재가 저런 목소리를 내다니. 오 주여. 록은 적그리스도의 선율이 아니었나요. 왜 이렇게 달콤한 것입니까. 라고 그 시절 중2병이 걸린 것처럼 읊조리곤 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충돌하면서 만들어 내는 신선한 충격이란 잔잔한 삶에 희락을 주는 마약과도 같다.
    퀸의 윔블리 실황은 어떤가.
    프레디 머큐리는 실황 내내 조증에 걸린 것 마냥 사과를 베어 먹으며 피아노도 쳤다가, 기타를 치는 브라이언 메이에게 가서 깝죽거리기도 하고, 베이스를 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는 존 디콘에게 가서 익살스럽게 장난을 걸며 무대를 떡 주무르듯이 쥐었다 폈다 한다.
    그의 모든 몸짓과 노래가 감동이지만, 내가 가장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무조건 프레디의 선창에 이어 관객들이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떼창으로 부르는 대목이다.
    우리의 똥꼬 발랄한 형 프레디는 이 파트에서 조증을 억누르고 아주 고요하게 무반주 상태에서 'love of my life'라는 가사를 아가가 날숨을 뱉듯 가만히 내뱉는다.
    이미 레퍼토리를 훤히 꿰고 있는 관객들은 이때 숨죽인 상태로 프레디의 선창을 기다리는데 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고요한 순간은 퀸 콘서트의 하이라이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다.
    클래식은 또 어떤가.
    대학 친구인 천재 소년 J군을 따라서 공부하듯 듣기 시작한 클래식은 전혀 나에게 감흥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허세가 넘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종종 레너드 번스타인과 카라얀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이 흐르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녔다.
    클래식을 유달리 지루해하던 내게 어느날 J군은 한 교향곡을 추천해 줬다. 이 곡은 바로 베토벤 9번 교향곡이었다. 교향곡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곡의 4악장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다.
    각종 악기의 소리를 층층이 쌓아가는 교향곡에서 개 뜬금없이 '오 친구여'라는 육성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선창에 뒤이어 남성 합창이 깔리고, 우리에게 너모 친숙한 딴딴딴딴 딴딴딴딴 딴딴딴딴 딴-딴딴이란 선율의 '환희의 송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아. 교향곡에 사람 목소리라니 베토벤 정말 또라이같다. 감탄 또 감탄. 어쨌든 이 또한 '반전' 아니겠나.
    클래식 중에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꼽으라면 역시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적'을 들 수 있다.
    이 곡 4악장에는 교향곡 주제에 무려 악기로 나무 해머가 등장한다. 그것도 '쿵, 쿵, 쿵' 마른 날벼락 떨어지는 것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말이 해머지 공사장 오함마와 다를 것이 무언가. 클래식 공연에 오함마라니.
    이렇듯 반전이 주는 파격과 해학은 음악 같은 예술 작품이건 삶에서건 신선한 활력을 선사한다.
    삶이 권태롭고, 지루하고, 무기력하고, 재미가 없다면 우리도 '반전'을 꾀해보자.
    평소 생얼로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명 강남 숍에 메이크업 예약을 하고 신부화장을 하고 직장에 가보자.
    완벽한 품행과 공과 사를 똑부러지게 구분하며 빈틈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너절구레한 옷을 입고, 양치도 하지 말고 진정 추레한 모습으로 출근을 해보자.
    이과 갬성 체크무늬 남방만 주구장창 입고 다녔던 공돌이라면 교향악단 지휘자 같은 연미복을 입고 교양 수업에 들어가 보자.
    세상 무쓸모한 문송이들은 고딩 수학 공식이라도 좀 외어서 친구들 앞에서 '2a 분에 마이너스 b, 플러스 마이너스 루트 b 제곱 마이너스 4ac'라도 읊어 보자.
    이런 반전의 진짜 반전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이 유쾌한 일탈이 당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루하고 고루한 삶을 타개하는 것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꿈틀꿈틀 알껍질을 깨고 나오려 스스로 제대로 굳지도 않은 부리를 놀리는 아가 새들처럼 우리 자신이다.
    자 모두 다 함께 이번 주말에는 안 하던 짓을 해보자. 그럼 이 재미없는 세상에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미친연놈 소리 좀 들으면 어떤가. 그냥 도른도른할 때도 있고, 말짱할 때도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거지.
    나도 이번 주말에는 단식을 해볼까 고민 중이다. 아니다. 그냥 먹는 순서를 바꿔서 디저트-메인-애피타이저 순으로 먹는 방법에 반전을 줘봐야겠다.
#단상 #메탈리카 #퀸 #베토벤 #말러 #반전이없이잼없는게대반전 #음악만이나라에서허락한유일한마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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