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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Nov 24. 2018

그렇게 나는 선배에게 OJT를 하게 됐다

#단상


 
    
     얼마 전 2진 선배가 오면서 나의 베이징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아니 생길 것 같다.
    특히 좋아진 것은 2진 선배가 곧 공항 취재에도 투입되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좀 더 여유가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취재한 다는 것이 아무리 베테랑 기자가 와도 턱턱 해내기가 쉽지 않다. 일단 북한에 대한 배경지식이 좀 있어야 하고, 자주 드나드는 북한 인사들에 대한 인상착의는 물론 취재 친밀도나 수행원에 대한 정보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항에서 매일 같이 마주치는 일본 매체 스트링어 여사님들에 마음을 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취재 계획도 짤 수 있고, 사전에 누가 들어올지를 상의해서 파악할 수 있다.
    뭐 그런 것이야 세월이 해결해 줄 문제이니 지금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
    지난주에는 1진 선배의 명을 받들어 2진 선배를 모시고 공항에 나가 OJT(on the job training)를 했다.
    기자 사회에서 인수인계란 굉장히 피상적인 것이다. 보통 출입처 이동이 있을 때 기자들은 후임 기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게 되는 데 이 출입처라는 것이 내가 다음 선수에게 인수인계를 해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기자 일은 보통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잘 사귄 취재원이라도 동고동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재원과의 유대관계를 다른 기자에게 고스란히 넘겨줄 수는 없다.
    그래서 보통은 홍보실 연락처를 넘겨주거나 좀 더 친절한 기자라면 절친 취재원과 같이 술자리를 만들어 후임 기자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는 정도다. 기자들에게 인수인계란 요정도의 의미기 때문에 다들 대충 하고, 대충 듣는 게 일반적이다.
    또 연차가 높은 기자들은 대부분 금방 출입처에 적응하기 때문에 특별히 인수인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특히 후배가 자기 직전에 출입기자였다면 가오를 생각해 과감히 인수인계를 생략하기도 한다.
    그렇다. 그래서 나도 선배도 공항에서 어색어색, 쭈뼛쭈뼛하며 OJT를 하게 됐다.
    이미 공항 취재를 함께하는 직원 2호 영혜와 3호 막내 숙연이에게 두 번이나 OJT를 해봤기 때문에 OJT 자체는 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공항에 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공항 곳곳에 있는 취재 포인트를 도는 것이다. 일단 공항은 굉장히 광활하기 때문에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진짜 기진맥진해 진다. 선배도 너무 힘들었는지 '와. 넓네요. 와. 머네요. 와. 쉽잖네요'를 연발했다.
    선배의 추임새에 괜스레 으쓱해진 나는 포인트마다 취재 주의사항, 취재 노하우, 취재 성공 확률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썰을 풀었다.
    한참을 돌던 선배가 커피를 마시자고 했을 때도, 공항에 오면 직원 2, 3호에게도 될 수 있으면 커피를 한 잔씩 사주는 게 사기진작에 좋다고 안 해도 될 설명까지 덧붙였다.
    여차여차 2시간 남짓 코스를 돌고 나서 선배와 공항 스벅에 마주 앉았는데 선배가 많이 지쳐 보였다. 그제야 나도 아. 내가 너무 오바했나.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앞에 두고 다시 오늘의 여정을 돌아다보니 선배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나 같았으면 후배가 나보다 잘 알든 말든 저저저저 아주 그동안 고생했다고 티 엄청 낸다. 나도 임마. 너만 할 때 응? 니네 스장이랑 응? 밥도 묵고 응? 술도 묵고 응? 마. 다 했어 임마. 응? 했을 텐데.
    선배는 가는 곳마다 주의사항, 요령 등을 꼼꼼히 물어보고 혹시나 내가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아닌가 배려하고, '그동안 너무 고생했겠네'라며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그리고 공항 주차비와 톨게이트비가 많이 들지 않았냐고 물어봐 주시며, 회사에 건의를 좀 해보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제 와 생각해보니 따뜻한 배려의 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선배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 "선배 힘드시죠? 저 있을 땐 제가 주로 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하니 선배가 "아니에요. 같이 해야지. 그동안 혼자 이렇게 한 것도 용하네"하셨다.
    아. 이 인복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험하기로 소문난 언론계에서 그것도 가장 빡세다는 우리 회사에서 이런 인품 좋은 선배들을 잇달아 3명이나 만나다니 왠지 베이징 생활 말년에 똥을 밟을 것 같지만, 지금 만큼은 너무 행복하다.
    OJT를 마치고 선배와 직원 2, 3호를 태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퀸 음악을 들으면서 뉸누난나 기분 좋게 운전을 하다가 "선배, 퀸 좋아하세요?", "늬들도 퀸 아니?"라고 물었다.
    아무 답이 없길래 조수석과 뒷자석을 둘러보니 셋 다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공항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베이징 하늘은 겨울난방이 시작되려는지 스모그가 낙양에서 새어 나온 빛을 머금어 연보라빛으로 물들었고, 차 스피커에서는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나오는데 뭔가 따숩고, 평온한 이 마음은 뭔지.
    '그래, 공항은 그래도 내가 하는 게 낫지'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 좋은 책임감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나는 오디오 볼륨을 가만히 줄이면서 부드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아자! 아자!' 구호를 외치듯 속도를 올려 사무실로 향했다.
    온수매트야 코딱지인지 코타츠인지 내가 찾아봤더니 따숩긴 따숩다더라. 그래도 너랑 든 정이 있는데 내 엉덩이는 너한테 맡기는 것이 젤 낫겠지? 그래 너는 코타츠한테 OJT할 일없게 할게. 우리 힘내자. 온수매트 화이팅!
#단상 #공항OJT #인복왕 #존선배콜렉터인가 #그래도공항한번씩나와주시겠지? #퀸을들으면서잠을잘정도면아닌가?

++이게 글로 보면 훈훈하고 막 아름답지만 실상은 저 짤처럼 셋다 피폐해져 있습니다요. 사람잡는 베이징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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