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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Apr 16. 2019

'중국 국보급' 고금(古琴) 대가 왕펑 선생

#중국 #고금 #왕펑

항상 차를 즐겨 마시는 왕펑 선생

<대가와의 만남> 중국 국보급 고금 대가 왕펑 선생

    '쥔톈팡'(钧天坊)의 문을 열자, 

    덥수룩한 수염이 턱부터 머리까지 경계 없이 휘몰아쳐 올라 있고, 도인 복장을 한 범상찮은 기운의 기인이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냥 고금(古琴)에 미쳐 있는 사람? 아니다. 고금과 혼연일체가 된 사람이라고 해야 맞겠다.

    그는 고금을 너무 사랑하고, 고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며, 후학 양성에 공을 들이고, 고금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한국에 있을 때 운이 좋게도 많은 장인, 무형문화재, 명창들을 만났다.

    그런 분 중에는 기인의 복장을 한 사람들을 여럿 봤는데 어떤 분들은 그 행색과 속을 채운 알맹이가 일치하지 않아 겉도는 때도 있다.

    왕펑 선생은 그의 겉모습과 내공이 딱 일치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기인답고, 약간은 상서로운 느낌이 나는 사람.

왕펑 선생은 자신이 만든 고금이 어떤 고금보다 최고라고 자신감을 갖고 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가끔 사람을 홀리는 듯한 사람이 있는데 왕펑 선생이 딱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분들은 자칫하면 주변에 사람이 몰리면서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자신만의 요새를 쌓고 그 안에 들어 앉아 버리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데 왕펑 선생과 그의 제자, 동료, 고금 공장 직원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아주 허물 없이 자연스러웠고, 자유분방한 그의 행색과 매우 일치했다. 모두가 그를 친구처럼 대했고, 그 또한 쥔톈팡에 몰려든 사람들을 아꼈다.

    쥔톈팡에는 그의 연주에 반해 고금을 배우러 오는 초급자부터 이미 연주가의 반열에 오른 전문가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머물고 있다.

    수업료만 내면 이곳의 모든 시설은 무료로 사용가능하며, 한번이라도 쥔톈팡을 방문했던 사람은 왕펑 선생과 쥔톈팡의 매력에 빠져 이곳을 떠나기 싫어 한다.

    다만, 연주할 때면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완전히 다른 경계를 지나 자신만의 음악 세계로 들어갸 몰입하고, 보는 사람마저 빨려 들어가게 하는 흡입력이 엄청났다.

    한국에서도 훌륭한 예인(藝人)들을 봤지만, 이런 포스를 풍기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음악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고대 어떤 고금보다 자신의 고금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자신감,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겸손함.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도가의 승복 같은 옷을 입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왕펑 선생을 빚어낸 것이다.

    그의 공간들도 꼭 그와 같았다.

    고금을 배우려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과 고금 연주가들이 머무는 숙소, 그리고 손님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객실, 고금 전시장, 연주실, 고금 작업실 모두 그가 생각하는 음악 세계의 철학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쥔톈팡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는 모습이 특징이다. 

    왕펑이라는 사람과 그가 머무르는 공간인 쥔톈팡은 잘 맞는 아귀처럼 꼭 들어 맞았다.

    쥔톈팡의 공간 하나하나, 놓인 가구 하나하나 모두 그의 손과 생각이 닿아 있었고, 내 몸의 어느 곳에 뭐가 있는지 알듯 왕펑 선생은 쥔톄팡의 구석구석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리고 150명이 넘는 식구들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만큼 이 공간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왕펑 선생은 "내가 생각하는 쥔톈팡은 단순히 고금을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라며 "중국 전통 문화와 삶의 자세 배우고, 개인적으로는 수양의 공간으로서 쥔톈팡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전통문화를 아끼는 중국의 태도가 너무 부럽고, 중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 준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한국의 장인들이 생각났다.

    한국의 어느 장인이 이렇게 '호사'를 누려 볼까.

    한국이라고 이런 높은 경지에 오른 장인이 없을까? 아니다. 분명히 있다.

    복희씨 때부터 5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고금 대신 거문고를 연주하는 한민족 아닌가. 

    우리네 장인들의 삶은 어떠한가 생각해보니 쓴 내만 가득 속을 채웠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돼봐야 돈 백만원 정도 푼돈 몇 푼을 손에 쥐여 주고, 온갖 제약이 따라붙는다.

    조그마한 영리활동에도 무형문화재이기 때문에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더 서글픈 것은 이마저도 목을 매는 한국 장인들의 현실이다.

왕펑 선생이 직접 디자인한 쥔톈팡의 손님들이 머무르는 객실

    1966년생인 왕펑 선생이 쥔톈팡을 베이징 다싱(大興)구에 세운 것은 2001년.

    본디 목공예를 전공했던 왕펑 선생은 고금 제작에 관심을 두면서 전문성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그 가치를 인정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고 2003년 고금과 이를 구성하는 문화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2006년에는 왕펑 선생이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고, 쥔톈팡은 국가문화산업 시범기지로 지정된다.

    왕펑 선생과 그의 공연단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무대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돌며 동방의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과 호주 기획사가 17억 원을 투자해 고금 연주와 현대 무용수 수백 명이 참여하는 스펙타클한 무대를 만들었다. 

    12회차의 공연은 모두 만석을 이루며 세계 문화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연주실에 마련된 대형 비전으로 10분 정도 길이의 공연 영상을 봤는데 연출력과 작품성 모두 관객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예술가와 전폭적인 국가의 지원이 만들어낸 '대작'이었다.

왕펑 선생의 개인 작업실(위칸 왼쪽)과 연주공간(위칸 오른쪽), 사고전서 컨셉으로 꾸며둔 사무공간(아래 왼쪽), 쥔톈팡의 식당.

    한국은 한류라는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의 것을 너무 외면한다는 것이다. 

    한류를 오래 지속하려면, 한류는 한류대로 발전시켜 나가고, 그 토대인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 지켜나가는 양수겸장의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이 이 두 전략을 모두 견지할 힘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술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를 알아봐 주고 지지해 줄 만한 문화적인 지도자가 없을 뿐이다.

    예술은 미래 사회의 반도체와 같다. 라는 말을 나는 자주 한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예술적인 부분을 중시한다.

    제조업 분야에서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의 추격은 이미 추격이란 말이 무색하게 우리를 넘어 서거나 바로 턱밑까지 쫓아 왔다.

    예술 역시 자본이라는 토양에서 자라는 씨앗이다. 지금과 같이 안이한 자세로는 우리의 한류는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할 것이다.

    왕펑 선생을 보면서 우리가 잊었던 것, 지켜야 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대가 #왕펑

++사진마다 설명있음.

이날 특별 게스트인 한국 수묵화의 대가 허달재 선생에게 금을 연주해 주는 왕펑. 두 대가의 우정은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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