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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May 04. 2019

엄마와 운동회와 김밥

#운동회 #김밥


엄마와 운동회와 김밥

    오늘 호수의  운동회 날이어서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내 기억에 국민학교 운동회 때 부모님이 왔던 기억이 거의 없다.

    사실상 가장인 엄마는 나가서 일하느라 바쁘셨던 것 같고, 아빠는 집에 계시긴 했는데 숫기가 없어 아줌마들 많이 모이는 그런 자리에 잘 오지 않았다.

    운동회 날 점심은 보통 엄마가 반 친구 엄마에게 부탁하거나 짜장면 사 먹을 돈을 주거나 때가 잘 맞으면 간혹 김밥을 싸주기도 했다.

    오전에 곤봉체조랑 부채춤, 단체 경기 같은 것이 끝나면 보통 점심시간이 됐던 것 같은데 그때 친구네 돗자리 귀퉁이에 앉아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짜장면값을 받은 날은 일단 운동회 날 교문 앞에서 아이스크림 통 아주머니가 파는 싸구려 콘 아이스크림이나 핫도그, 솜사탕 같은 거 사 먹고 운동회가 파하기를 기다렸다가 동네 짜장면집에 가서 같은 처지의 친구와 함께 짜장면을 사 먹었다.

    운동회 때 사실 가장 싫은 것이 친구네 돗자리 귀퉁이에 앉아서 점심을 같이 먹는 것이었다. 누가 눈치 주는 것도 아닌데 괜히 불편해서 조금만 앉아 있다가 배부르다고 거짓말하고 군것질하러 자리를 떴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운동회 날은 점심시간에 교문 밖을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교문 앞에 쭉 줄지어 서 있는 군것질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다 사 먹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말과 공기주머니가 고무 튜브로 연결된 장난감 말이 있었는데 바닥에 두고 공기주머니를 누르면 달리듯 움직이는 장난감도 자주 가지고 놀았다.

    당시에는 별로 서운한 감정 없이 운동회 날을 보냈던 것 같고, 오히려 짜장면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도 같다.

    소풍 때도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다.

    누나와 터울이 네 살이나 차이가 나서 누나가 졸업하고는 일타쌍피가 안 되니 거의 그렇게 보냈던 것 같다.

    그때 잘 못 먹어봐서 그런지 지금도 손으로 싸주는 김밥을 참 좋아한다.

    일 년에 한 번이나 먹을까 했던 엄마가 싸준 김밥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바깥일 하느라 요리하는 걸 그다지 안 좋아하셨지만, 손맛이 좋은 엄마는 가끔 대충 하듯 요리를 뚝딱하셨는데 뭐든 정말 맛이 좋았다.

    당시 부엌칼이 하나였던지 칼에 배인 마늘 냄새가 싸~하게 나면서 아귀힘이 좋은 엄마가 깡깡하게 말아 찰밥으로 만 것 같은 그 김밥이 지금도 입안에 들은 듯 느낌이 생생하다.

    특히 엄마는 오이 대신 내가 좋아하는 시금치를 꼭 넣었고, 햄 대신 분홍 소시지를 넣었다. 계란은 항상 아침이 바빴던 터라 살짝 타서 고소한 탄내가 났다. 지금도 엇그제처럼 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다 떠오른다.

    이제는 엄마가 방아쇠 증후군인지 뭔지 손 수술도 두 번이나 하는 바람에 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김밥을 싸지도 못할뿐더러 외식을 더 좋아하시니 다신 저런 김밥을 맛볼 수 없겠지?

    한번 싸 달라고 해볼까?

#운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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