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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11. 2019

솜털 같은 자식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애비 마음

#에세이

<솜털 같은 자식을 바라보는 애처로운 애비 마음>

    오늘은 호수의 졸업식 날이다.

    유치원 졸업식도 졸업식으로 친다면 호수 생애 첫 졸업이자 나에게도 생애 첫 자식의 졸업식인 셈이다.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호수가 다니는 유치원 강당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졸업식은 30여 분 남짓으로 끝이 나고, 기념 촬영, 물놀이 등 식후 행사가 이어졌다.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호수는 록수와 내 속을 많이 썩인 아이였다.

    뭔가 말썽을 피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약간은 우둔하고 내성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사회성도 조금 떨어지고, 교우 관계에서도 부침을 많이 겪었다.

    자식을 키워보면 알지만, 다른 모든 것을 다 해줘도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어떤 교우관계를 쌓느냐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적극적으로 학부모 모임을 하고 방과 후에 아이들을 함께 놀리고 해봐도 타고난 성향에 따라 아이들은 또래 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기자를 하면서 생긴 스킬이 하나 있다.

    어떤 현장에 가서 그곳의 사람 무리를 관찰하다 보면, 그 구성원들의 각자 포지션 또는 권력관계를 금방 눈치챈다.

    호수가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오늘처럼 길게 호수와 친구들의 행동을 관찰한 적은 없었다.

    이미 전해 듣기도 하고, 호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짐작은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있는 호수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호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양보하는 아이였다. 아니 양보를 강요받는 아이라고 해야 할까.

    주변에 머무르는 아이.

    친구들이 무슨 놀이를 하든 설령 너무 신이 난다하더라도 친구들에게 다가가 "함께 하자"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런 아이다.

    호수는 본디 성격이 그러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드센 친구가 있으면 더 움츠러들어 버린다.

    자기 장난감도 누가 뺏어 가면 그 친구 주변을 빙빙 돌 뿐 돌려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나와는 전혀 반대되는 성향이라고 할까.

    록수가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애라 조금 더 적극적이고 활달하면 좋을 텐데"라고.

    나는 록수에게 "모든 아이가 그런 성격일 수도 없고, 그런 성격이 다 좋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사실 애니메이션을 봐도 가장 강력한 캐릭터는 말 없고 생각 많은 '실눈 캐릭' 아니겠다.

    물론 내가 워낙 활발한 성격인 탓에 호수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아쉬운 점도 당연히 있다.

    그래도 나는 지금 모습 그대로의 호수를 응원해줄 생각이다.

    스스로 차분한 성격을 더 갈고 닦든 성격을 좀 더 자신감 있게 고치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옆에서 박수만 쳐줄 생각이다.

    호수는 오늘도 몇 번이나 내게 장난감을 다시 찾아달라고 도움을 청했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에게 가서 돌려 달라고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했다. 그러면서 아빠가 여기 서 있을 테니 갔다 와 보라고 했다.

    몇 번인가 용기를 내서 우물쭈물 친구에게 이야기를 건넨 호수는 대차게 무시를 당하고 끝내 장난감을 되찾아 오지 못했다.

    호수가 전에도 자기가 받은 선물을 누군가 가져가 속상하다고 말한 적이 있던 터라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겠구나 하는 기자적 직감이 휙- 머리를 스쳤다.

    물론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호수 뒤에 서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다.

    이겨내는 것은 호수의 몫이다.

    사실 나는 호수가 내성적인 사람으로 남든 외향적으로 성격이 바뀌든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하고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안 좋은 것이 아니고, 나하고 같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다.

    그저 호수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으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어느 날 호수가 내게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조금 놀라 눈을 크게 뜨자 호수가 얼른 "근데 난 혼자 노는 게 더 좋아"라고 말을 고쳐 잡았다.

    아직은 어리니까.

    언젠가 호수에게도 호수를 전심으로 이해해주는 좋은 친구가 생길 거라 믿는다.

    시끌벅적하기만 하고 손에 건더기 하나 남는 것 없는 나하고 달리, 깊고 은은하고 짙은 우정을 나누는 호수가 되기를 응원한다.

#자식이란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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