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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16. 2019

그래서 고향이 차암 조타

#고향

<그래서 고향이 차암 조타>

    '기분 좋은 귀찮음'
    가족만큼 좋은 게 있을까
    막 고향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 기차에 탔다.
    많은 고민과 걱정을 안고 온 고향인데 따뜻한 위로를 받고 간다.
    가족, 친지, 그리고 가족 같은 친구들.
    언제 봐도 좋고, 언제 봐도 반가운 얼굴들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은 꼭 내가 가면 이거 저거 처리해달라고 부탁을 많이 하신다.
    본인들이 해도 되는데 꼭 나를 찾으시는 것이 귀찮기도 한데 기분이 좋기도 하다.
    마치 어리광 피우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이만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따숩기도 하고, 아직 쓸모가 있고 가족이 기댈 수 있는 사람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부모님은 남이 내 자랑하는 것을 듣기 좋아한다.
    그저 아재력 충만한 필부인 나지만, 시골에선 좀 먹히는가보다.
    남이 하는 내 칭찬을 들으며 뿌듯함을 감추려고 어색한 표정을 짓는 부모님의 얼굴은 그 어떤 인물화보다 예쁘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 하고 싶어 길을 돌아가는 아빠와 전화통화를 길게 하려고 김어준의 유튜브 이야기까지 하는 엄마를 보면 '내가 엄청 사랑받는구나' 하는 기분 좋은 귀찮음을 느낀다.

    나를 역에 태워다 준 장인어른도 참 좋다.
    아침에 교회에 갈 때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나서서 처제, 처남, 록수 이름으로 산 땅이라며 맹지를 보여주는데 얌전한 양반이 설명하느라 애쓰시는 모양이 너무 미쁘다.
    역에 올 때도 샛길로 멀리멀리 돌아오고  차의 속도를 천천히 하는 아버님의 운전하는 뭉튼 그 손과 발도 좋다.

    그리고 호수, 단이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밤 잠자리에 안 주무시고 내 주위로 둘러앉은 식구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행복하다.
    개구쟁이들이 장난친 이야기, 호수 달리기 계주 주자로 뛴 이야기, 미술관 관람 가서 사진 찍는 이야기, 똑순이 단이 솰라솰라 아무 영어 하는 이야기를 술술술 풀어드리면 눈이 초롱초롱하고, 입안 가득  미소를 머금고 듣고 있는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을 훔치는 노상옥 여사에게 다가가 이제 한 줌 크기의 어깨를 쓸어 드리며 "할매 왜 운댜"하면 "자네 건강 챙겨. 늙은이는 죽어도 그만이지"하실 때 코가 시큰하는 것도 고추냉이 한 움큼 집어 먹은 거마냥 쎄하니 좋다.

    막말과 억지를 쓰며 당구대를 휘두르는 고향 선후배들도 식구 같이 좋다.
    내가 술도 못 마시는 몸이 돼서 사람 못쓰겠다면서 10시에 집에 간다니 "신데렐라여?"하고 걱정 한가득한 그 표정을 보는 게 좋다.
    진심 어린 걱정이 담긴 그 가식 없는 걸쭉한 욕설과 표정이 진한 국밥 국물처럼 좋다.
    축구보다 잠든 내 배 위로 담요를 덮어 주는 그 거친 흙두꺼비 같은 손이 좋다.
    새벽에 일어나 나오는 데 눈 비비고 나와 차로 태워다 주는 그 애틋한 정이 좋다.

    이리저리 돌고 돌고 바삐 다녀 조금 피곤하지만 고향만큼 나한테 좋은 기운을 주는 곳은 없다.
   나는 그래서 내 고향이 차암 조타.
#내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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