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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돼지터리언국 총리 Jun 17. 2019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에 부쳐-좌절된 서민의 광대놀음

#영화 #리뷰

<虫이 돼버린 좌절된 서민의 광대놀음>

기생충을 봤다.
우리 세대 그러니까 IMF를 거친 세대에게 살면서 우여곡절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다들 기생충을 보고 거북함을 느꼈다거나 옛기억이 소환돼 힘들었다거나 두번 보기 힘들었다는 감상평을 남기는가 보다.

나는 어땠나?
가난과 처절함의 재현으로만 본다면 가끔 나오는 송강호 부부의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이 송곳처럼 나를 찔렀을 뿐 크게 리얼리티를 느끼지는 못했다.
봉준호 감독이 당연히 상징과 은유를 사용해 그랬겠지만, 리얼함만 놓고 보면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밑바닥의 삶과 폐륜, 가난, 그 가운데 삶을 붙들어 주는 실낱같은 '정'(情)을 더 잘 표현했다고 본다.

아마도 두 감독의 성장 배경에서 이 차이가 드러난 것 같은데 나는 똥파리를 보면서 이건 극이 아니라 자신의 실제 경험 아니면 최소한 간접 경험을 그대로 옮겼다고 생각했다.

똥파리에는 있고 기생충엔 없는 것은 폐륜 코드와 가난한 자들의 무지다.
송강호 가족은 가난할지 언정 무지하거나 미련하거나 부모와 자식간의 선을 넘지는 않는다.
아들이 영어과외를 한다거나 딸이 미적감각이 뛰어나 미술치료를 할 수 있고, 개사료 봉투에 적힌 영어를 척척 읽는 엄마의 모습은 이들이 하층민이 아니라 좌절된 서민이라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가장 밑바닥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 될 수 있는 좌절된 중산층을 묘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거북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나는 20살에 사회에 나갔고, 집의 빚을 떠안았고, 25살에 대학에 입학했으니 아마도 우리 세대에서 내 성장과정은 하위 10% 안에 들 것 같은데 기생충에서 전혀 거북함을 못 느꼈다.
뭐 이게 '늬들이 아직 고생을 덜해 이런 거에 징징대는 거야 이것들아'라는 게 아니라 그냥 별 감정없이 봤달까.
아니 약간 귀엽고 밝은 가족의 모습에서 현실성이 떨어졌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부분은 나름 좋은 배경에서 자란 봉감독이 인식하는 하류인생에 대한 인상이었다.
당연히 감독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감독의 눈을 통해 영화에 표현한 그 모습 말이다.

박 사장의 집 지하에 기생하는 밑바닥 사람들.
박사장에게 감사와 경배를 보내다가도 인간의 존엄이 건드려졌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하층민의 모습이 나는 인상 깊었다.
'아 이게 사회지도층에게 비춰지는 기생충 같은 하층 인생의 모습이구나'싶었다.
윗사람들에게서 떨어진 콩고물을 주어 먹고, 그 콩고물을 두고 악을 쓰며 다투고, 결국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져 절대 선을 넘어 올 수 없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잘 표현됐다.
상류층의 눈에 비친 좌절된 서민들의 모습은 그렇게 봉감독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됐다.
가난의 기억이 아니라 위로 올라갈 사다리가 제거됐음을 쓰리게 알려주는 이 지점이 우리가 이 영화를 거북하게 느끼는 통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치 광대가 관객을 쥐었다 폈다해도 결국 밥벌이를 위해 관객 앞에 서야만 하고, 막이 내리면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광대놀음 같은 그런 것 아닐까.

사실 위로 올라갈 수 없음에 좌절하는 건 그나마 한가닥 희망(지식과 생존능력)이라도 손에 쥔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치다.
봉감독은 이런 모습을 시각보다는 그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후각으로 표현했다.
문제의 '지하철 냄새'가 바로 그 통각의 한 가운데에 있고, 송강호의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영화 연출에 대해서는 나같은 무지렁이가 감히 평할 수 없을 정도니 평가를 삼가고 싶다.
그게 황금 종려상을 받은 이유이기도 할터이니 나같은 문외한이 평가할 바는 아니다.
나에게 기생충은 열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였다.

기생충의 황금 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 수상에 다시 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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